[르포] 대륙 누비던 독립투혼…중국 천진불변단 활동지에 가다

Heritage / 신민재 / 2023-06-2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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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 전 톈진서 조직돼 임시정부 비밀외곽단체로 활약
2002년 현지조사 당시 추정된 사적지 일대, 흔적도 없이 사라져
▲ 톈진 중심가 옛 프랑스 조계지에 남아 있는 성당 건물 [촬영 신민재]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1919년 기념사진 (톈진=연합뉴스) 1919년 10월 11일 촬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사진.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신익희, 안창호, 현순, 이춘숙, 최창식, 윤현진, 김철.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천진불변단 사무실 터 추정장소 (톈진=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천진불변단 사무실 터로 추정되는 지점(사진 오른쪽 네모). 현재 주거시설 재개발 공사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2023.6.28 smj@yna.co.kr

▲ 2002년 조사 당시 촬영된 톈진 시내 옛 프랑스 조계지 (톈진=연합뉴스) 2002년 독립기념관이 진행한 해외독립운동사적지 현장 조사 때 촬영된 천진불변단이 조직된 옛 프랑스 조계지의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장 만주 봉천 방문 기념사진 (톈진=연합뉴스) 해방 직후 임시정부가 약 400만명에 달하는 재중교포의 보호와 송환 문제 등을 처리하기 위해 설치했던 주화대표단의 활동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르포] 대륙 누비던 독립투혼…중국 천진불변단 활동지에 가다

104년 전 톈진서 조직돼 임시정부 비밀외곽단체로 활약

2002년 현지조사 당시 추정된 사적지 일대, 흔적도 없이 사라져

(톈진=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지난 27일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차량으로 2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항구도시 톈진(天津·천진).

한낮 40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날 톈진 중심가인 허핑취(和平區) 일대에 들어서니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럽풍 건물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186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까지 서구 열강들이 직접 통치하던 조계지가 있던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많은 유럽 양식 건축물을 남겼는데 상당수가 아직 남아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현재 인구가 1천400만명에 육박하는 대도시인 톈진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독립투사들은 톈진이 중국 동북과 베이징, 상하이, 국내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인 데다 여러 국가의 조계지가 있어 정치적 활동이 용이한 점을 활용해 일제에 항거하며 톈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의열단과 아나키즘 등 다양한 계열이 톈진에 진출해 독립운동을 벌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의 비밀외곽단체였던 '천진불변단'도 바로 이곳 톈진의 프랑스 조계에서 결성됐다.

1919년 4월 조직된 천진불변단은 프랑스 조계 지셴리(集賢里) 36호 2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립기념관은 2002년 톈진 현지에서 해외독립운동 사적지 학술조사를 진행했는데 천진불변단 사무실 자리를 지금의 허핑취 난징루(南京路) 또는 난징루에서 조금 떨어진 다구베이루(大沽北路) 일대로 추정했다.

조사 당시에는 이곳에 2∼3층짜리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현재는 주변에 백화점과 주상복합이 들어서면서 천진불변단 사무실 추정 건물 또한 흔적도 없이 철거됐다.

현재는 이 자리에서 주거시설 등을 새로 짓기 위한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상에서는 건설업체가 설치한 건물 2층 높이의 담이 천진불변단 사무실 터로 접근하는 소로를 포함한 블록 전체에 사방으로 둘러져 있어 일반인은 접근이 어렵다.

대로 맞은편 빌딩에 올라가 재개발 현장을 바라보니 천진불변단 사무실 터 일대에는 타워크레인과 공사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바로 옆에서는 건물을 올리기 위한 하부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은 "재개발 공사용 펜스가 설치된 지는 2년 정도가 됐다"며 "톈진에서도 워낙 땅값이 비싼 시내 중심부라 이 일대는 재개발 사업들이 하루가 다르게 진척되고 있다"고 말했다.

천진불변단에 참여한 주요 인물은 명제세, 김철, 박용태 등이었다.

명제세는 천진불변단에 참여한 뒤 임시정부의 국내 특파원을 역임했고 1924과 1927년에는 각각 조선물산장려회와 신간회 활동에 투신했다.

박용태는 천진불변단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천진 한교동지회와 대한독립당주비회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오대록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천진불변단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특파원들을 국내에 파견해 임시정부가 추진했던 제2차 만세시위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불변단원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비록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천진불변단은 지속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등 항일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톈진에는 해방 직후 임시정부가 재중교포들을 귀환시키기 위해 중국 당국과 협의해 설치했던 주화대표단 톈진분단 터와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이 교수로 재직했던 북양대학 터 등지에 선열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오 위원은 "천진불변단 사적지의 명확한 위치 지정을 위해 당시 프랑스 조계지 지도와 이후 지번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등을 확보해 학술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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