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재탄생] 서귀포 해안 절벽 위 건축 유산이 '독서 명당'으로

K-TRAVEL / 전지혜 / 2026-04-26 06: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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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중업 작품 추정 '소라의 성'…제주도 '우수건축자산'
철거 위기 넘기고 시민·관광객에 사랑받는 열린 공간으로
▲ 서귀포 '소라의 성' [촬영 전지혜]

▲ 서귀포 '소라의 성' [촬영 전지혜]

▲ 소라의 성 2층 북카페 [촬영 전지혜]

▲ 소라의 성 2층 북카페에서 바라본 서귀포 바다 풍경 [촬영 전지혜]

▲ 소라의 성 2층 북카페 [촬영 전지혜]

[빈집의 재탄생] 서귀포 해안 절벽 위 건축 유산이 '독서 명당'으로

고 김중업 작품 추정 '소라의 성'…제주도 '우수건축자산'

철거 위기 넘기고 시민·관광객에 사랑받는 열린 공간으로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서귀포=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올레 6코스가 지나는 곳으로,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제주 서귀포시 소정방폭포 인근 산책로를 걷다 보면 해안 절벽 위 세워진 독특한 외관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969년 지어진 '소라의 성'이다. 지상 2층, 전체 면적은 234.05㎡ 규모 건물이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계 등에서는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고 김중업(1922∼1988)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 시대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축가가 국내에 매우 드물었으며, 곡선 처리 방식이나 건축자재 사용 등을 볼 때 김중업의 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은 '폭포와 파도가 만나는 곡선의 아름다움'이라는 말로 이 건물을 소개한다.

안내판에는 '단순하면서도 곡선이 갖는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돋보이는 소규모 건축물', '곡선과 직선 요소에 의해 4면이 각각 다른 표정을 가진 독특한 형태의 건축은 급한 경사 절벽과 완만한 해안선으로 구성된 제주 해안의 장소적 특성에 거슬리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이 건물은 제주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돼있기도 하다.

애초 어떤 용도로 지어졌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며, 과거 한동안 식당으로 쓰이기도 한 이 건물은 2003년 10월 주변 일대가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건물이 김중업의 작품이라고 알려지면서 문화예술계에서 철거에 반대했고, 결국 서귀포시가 7억9천여만원을 들여 건물과 주변 토지를 매입해 관리해왔다.

건물은 한동안 사단법인 제주올레 사무국과 제주올레 탐방 안내센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 노후화 등으로 균열과 누수 현상 등이 심해졌고, 결국 2016년 5월 폐쇄됐다.

이후 서귀포시는 이 건물을 시민 품으로 돌려달라는 지역 여론에 따라 외벽 도장과 건물 방수 등 보수공사를 벌여 시민들을 위한 북카페로 단장, 2017년 10월 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소라의 성은 현재 1층은 관광안내소, 2층은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롭던 지난 20일 오후 찾은 소라의성 2층 북카페에는 해안 절경을 벗 삼아 독서하며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부부부터 젊은 청년까지 다양한 세대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 저마다 책을 한두권씩 집어들고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아 독서를 즐겼다.

주변 올레길을 걷다 들어온 듯 등산복 차림에 등산스틱을 들고 온 사람들도 있었고, 관광하다가 들른 듯 어린 자녀를 데려온 가족도 있었다.

바다를 향해 넓게 난 창밖으로는 푸른 바다와 섶섬·문섬, 주상절리가 어우러진 서귀포만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는 파도가 해안가에 부딪히는 찰싹찰싹 소리와 바닷바람에 나뭇잎이 사락거리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내부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까지 어우러져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탁 트인 느낌의 내부 공간에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들이 곳곳에 비치됐다.

책꽂이에는 소설책, 제주 문화와 제주 여행 관련 도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수백권 빼곡히 꽂혀 있었다.

방문객들은 한참 책에 고개를 파묻고 독서를 즐기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눈부신 풍경을 눈에 담기를 반복하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잠시 들러 바다 풍경을 보며 앉아있다 가거나, 사진을 찍고 가는 이들도 더러 보였다.

한편에 놓인 방명록에는 방문객들이 저마다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느낀 감흥을 간단한 글로 남겨뒀다.

'아름다운 서귀포 바다가 보이는 소라의성 북카페. 이곳 아름다운 곳에서 잠시 머문다', '토독 비 오는 날 소라의성 북카페 또 오고 가요', '다시 찾은 소라의 성. 처음에는 우연히, 오늘은 자발적으로' 등 여유와 행복을 즐기고 간다는 후기가 가득했다.

북카페 관리를 위해 상주하던 직원은 "보통 하루에 60명에서 100여명 정도 방문하는 것 같다. 명절을 제외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중년 방문객은 "2년 전에 우연히 알게 돼서 왔었는데 너무 좋았다. 다시 한번 와서 책을 읽고 싶어서 이번에 아내와 함께 다시 왔다"며 "차 없이 여행하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이나 걸려서 왔다"고 했다.

그는 "정말 너무 좋은 공간이다. 제가 제주에 살면 여기서 무료 봉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소라의 성 북카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점심시간(정오∼오후 1시) 1시간은 잠시 문을 닫는다.

커피나 음료는 판매하지 않으며, 음료를 제외한 음식물 반입은 금지다. 정수기가 비치돼있고 와이파이 사용도 가능하다.

비치된 책은 자유롭게 꺼내 보고 제자리에 꽂으면 된다. 책을 대여할 수는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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