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와 내가 하나돼 작품이란 다른 하나 탄생"…김윤신 회고전

K-TRAVEL / 박의래 / 2026-03-11 14: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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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전기톱 김윤신'의 예술 인생
호암미술관 첫 韓여성작가 회고전…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170여점
▲ 김윤신 회고전 전시전경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윤신 작가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왼쪽부터) '합이합일 분이분일 1979',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4-11'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왼쪽부터)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9-211', '합이합일 분이분일 1994-520'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왼쪽부터)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0-45',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윤신 1967년 작 '예감'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윤신 작 1973년 작 '지향적 염원 1973-2'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윤신 2013년 작 '내 영혼의 노래 2013-50' [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윤신 작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료와 내가 하나돼 작품이란 다른 하나 탄생"…김윤신 회고전

"나무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전기톱 김윤신'의 예술 인생

호암미술관 첫 韓여성작가 회고전…6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170여점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어릴 때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나무가 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무 작품으로 남기는 것은 나를 남기는 일이에요. 나무가 나를 오늘날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나무를 재료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온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91)의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오는 17일부터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호암미술관 최초 한국 여성 작가 회고전이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판화부터 실험적인 평면 작업, 나무 조각, 60대 이후 몰입한 다채로운 회화까지 170여 점을 통해 김윤신의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11일 미술관에서 만난 김윤신은 "지금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한다. 내 영혼과 육신이 작업하는 마음으로 하나 돼 집중하면서 작업한다"며 "다만 젊을 때는 형태에 집중했다면 나이 들면서는 내 속의 예술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것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은 전시 제목이기도 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연작이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分)한다는 의미로, 김윤신이 평생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온 조형 이념이다.

1979년 작은 통나무에 틈을 내고 끌과 자귀로 다듬어 만든 조각이다. 이 시기 작업은 나무 본래의 굴곡이 살아있고 껍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 나무 본연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신은 "어릴 적 어머니는 새벽이면 나를 데리고 산에 가 작은 돌을 하나 찾고 그 위에 촛불을 켜고 기도했다"며 "돌과 나무를 쌓는 것은 무언가를 염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4-11'은 아르헨티나 체류 초기 작품으로, 아르헨티나에서 펼쳐질 김윤신의 새로운 조각 세계의 서막과 같은 작품이다. 나무 몸통을 과감히 파고들어 만든 수직의 심부를 따라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덩어리를 자유롭게 배치했다.

아르헨티나 나무는 한국 수종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단단했고, 결국 그는 전기톱을 들었다. '한 손엔 나무, 한 손엔 전기톱'이라는 김윤신의 상징이 탄생한 사건이었다. 전기톱은 일반 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힘을 부여하며 역동적인 표현을 가능케 했다.

김윤신은 "나무가 너무 크고 단단해 전기톱을 사다가 자르고 힘들게 집으로 옮겨와 작업했던 작품"이라며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한 작업이고 너무 고생해서 정이 많이 든 작품"이라고 전했다.

'1989-211'은 나무가 아닌 돌 조각이다. 당시 김윤신은 멕시코 채석장에 장기간 체류하며 돌조각 제작에 몰두했다. 김윤신에게 돌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한 자연의 재료였다. 돌 자체의 거친 표면, 작가의 작업 흔적, 돌 내부의 자연 색상과 무늬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1994-520'은 나무를 위로 쌓는 대신 'T'자 형으로 가로가 길게 만든 수평 작품으로, 1990년대 많이 작업했던 방식이다. 김윤신 조각의 특징인 기원의 마음을 담으면서도 기독교의 십자가 형태로도 보인다. 한복의 소매나 한옥의 처마 형태도 드러나 한국 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 무속까지 모두 담긴 복합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2020-45'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외부 활동이 제한됐던 2020년에 만들었다.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던 김윤신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남은 폐목과 주변 건축 폐자재에 회화를 결합해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였다. 이 시기 작품은 추상화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듯한 조각적 회화, 혹은 회화적 조각의 형태를 이룬다.

김윤신은 "집에만 있다 보니 어릴 때 별과 놀고 비, 풀, 나무와 이야기하던 시간이 많이 생각났다"며 "그때 나무에 그림도 그리면서 하던 장난이 떠올라 그 마음으로 나무에 그리기 시작했다. '회화 조각'이라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세상을 떠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노래하는 나무 2013-16V1'는 지난해 만든 작품이다. 안데스산맥의 웅장한 생명력을 담아낸 2013년 작 '2013-16'을 금속으로 캐스팅한 뒤 이를 캔버스 삼아 강렬한 색채와 특유의 추상적인 형태를 자유롭게 펼쳐놓았다.

회화와 조각의 결합을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90세 노장의 예술적 열망과 집념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작가가 야외에도 작품을 설치하고 싶어 하면서 최근에는 과거 작품을 금속 조각으로 옮기고 색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번 회고전의 방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다양한 추상적 형식 실험과 평면 작업도 만날 수 있다.

태극 문양을 모티프로 한 1967년 작 '예감'은 김윤신의 대표 판화 작품이다. 종이의 반쪽을 먼저 찍은 다음 종이를 돌려서 나머지 반쪽을 찍는 방식으로 색다른 이중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동일한 이미지의 반전으로 나타난 새로운 형태는 균형감과 역동성을 동시에 자아낸다.

파리 유학 중 석판화를 전공한 김윤신은 무거운 석판을 다듬고 깎고 부식시키는 판화 기법을 빠르게 섭렵해, 1960년대 후반에는 원숙의 경지에 이른다.

1970년대 초 김윤신은 조각과 함께 역동적인 도형 모티프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삼각형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연작 '지향적 염원'이 대표적이다. 제한된 색채 사용으로 기하학적 구조를 선명하게 강조한다.

삼각형은 하늘을 상징하는데, 파리 유학 시절부터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살아온 김윤신에게 세심하면서도 굳건하게 쌓아 올린 삼각형은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 영혼의 노래'는 김윤신이 예술에 대한 깊은 신념으로 자연을 표현한 연작 회화로 2000년대 초반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다.

삼면화로 구성된 '2013-50'은 나무와 같은 중앙의 기둥을 중심으로 잎사귀들이 흩날리며 화면 전체에 펼쳐져 있다.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이 선명하게 어우러진 화면은 마치 화창한 날의 단풍처럼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인상을 자아낸다. 자연과 생명의 에너지를 노래하는 김윤신의 환희와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다.

김윤신은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에 다녔다.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조각과 석판화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일하고, 미술계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하던 1983년 12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기반을 뒤로하고 자신의 조각 재료인 나무가 풍부한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며 새로운 예술적 도전에 나섰다.

이후 김윤신은 남미의 원목을 재료로 더욱 과감하고 역동적인 나무 조각의 세계를 펼쳤다. 198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브라질과 멕시코에 머물며 돌 조각으로 재료의 범위를 넓혔고, 회화에도 깊이 몰입해 다채로운 회화 연작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을 열었고, 2018년 주아르헨티나 한국문화원에는 상설 전시관이 설치됐다.

김윤신은 "여전히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게 어떤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내 평생의 작품들이 후세에 좋은 영향을 주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이며 입장료는 2만5천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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