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국보] ①반구대암각화, 세계적 유산 자부하지만…큰비 오면 수몰

Heritage / 허광무 / 2021-08-17 0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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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 댐 탓에 50여 년 침수·노출 반복, 세계유산 등재한다면서 대책 못 찾아
제방·물길변경 등 번번이 실패…2014년부터 댐 저수위 유지해 침수일 줄어
▲ 물에 잠긴 국보 '반구대 암각화' 빨간색 사각형 안이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장소. 암각화 전체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물 밖으로 나온 반구대암각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 6월 3일 오후 울산 반구대 암각화 현장을 방문해 울산시 관계자로부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 시설로 검토됐던 카이네틱 댐 [연합뉴스TV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2005∼2020년 반구대암각화 침수 일수 현황 사연댐 수위 조절을 시작한 2014년부터 연간 침수일은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한 해 평균 42일가량의 침수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울산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편집자주 =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생활상이 새겨진 바위 그림입니다. 인류사적 가치가 커서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문화유산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비가 올 때마다 불어난 하천물에 잠기는 굴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암각화 옆을 흐르는 대곡천의 하류 지점에 있는 사연댐 영향입니다. 다행히 이 댐에 수문을 설치, 수위 조절을 통해 암각화 수몰을 방지하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세계유산급 국보를 이번에는 물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연합뉴스는 암각화 수몰의 역사와 현재 상황, 댐 수문 설치를 통한 암각화 보존 방안,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위한 과제 등을 짚어보는 특집기사를 3회에 걸쳐 마련했습니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김근주 기자 =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은 올해 2월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됐다.

이는 1971년 반구대 암각화 첫 발견 이후 50년 만이자 2010년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등록된 후 11년 만의 성과다.

울산시는 2025년 7월께 대곡천 암각화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 남아있는 국내외 절차를 착착 밟을 일만 남은 듯하지만,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반구대 암각화가 불어난 하천물에 잠기고, 그로 인해 훼손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세계유산급 문화재를 수몰의 고난으로 내몰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부끄러운 국보 수몰의 역사는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끝낼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 댐 건설 후 상류에서 유적 발견…큰비만 오면 침수돼 훼손 가속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25일 당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다.

대곡천변 가로 10m, 세로 4m가량의 반듯하게 선 절벽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과 상어·거북·사슴류 따위의 바다와 육지 동물 등 307점이 새겨져 있다.

약 7천∼3천5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위 그림은 신석기 시대 수렵·어로 모습을 표현,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적으로 꼽힌다.

그런데 암각화가 발견되기 6년 전인 1965년 12월, 대곡천을 따라 4.5㎞ 하류 지점에 생활용수 공급 목적의 사연댐이 건설됐던 것이 암각화에 악재가 됐다.

사연댐은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는 자연 월류형 댐이어서, 많은 비가 내려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상류의 암각화까지 물에 잠기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사연댐 만수위 표고는 60m인데, 암각화는 53∼57m에 있다.

즉 댐 수위가 53m만 돼도 암각화 부분 침수가 시작되고, 57m가 넘으면 암각화 전체가 물에 잠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보존하기는커녕 침수와 노출 반복에 따른 훼손조차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

암각화는 모자이크 구조의 변성암인 '혼펠스'(hornfels) 위에 새겨져 있다.

이 혼펠스는 점토가 굳은 암석 셰일(shale)이 2억 년 전 지각변동 때문에 발생한 고열로 겉면이 도자기처럼 굳어 생성된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삶은 달걀처럼 겉은 딱딱한데 속은 물렁물렁한 점토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셰일은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 쉽게 약해지는 특성이 있는 데다, 겉면이 훼손돼 틈 사이로 물이 드나드는 현상이 반복하면 그림이 흐릿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2011년 울산대 반구대암각화 유적보존연구소 보고에 따르면 1972년, 2008년, 2008년 암각화 암면 사진을 분석한 결과 56개 지점에서 탈락이 확인되기도 했다.

◇ 물에서 국보 건지기 '줄줄이 실패'…댐 수위 조절로 일정 성과

1995년 6월 반구대 암각화가 국보로 지정된 이후, 암각화 침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이어졌다.

물론 지금처럼 그때도 사연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는 방안이 가장 쉽고 근본 대책으로 꼽혔다.

그런데 사연댐이 울산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대체 상수원 없이 무작정 댐 수위를 낮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대 지방정부가 암각화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댐 수위 조절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수위 조절을 제외한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는데, 2003년 암각화 주변에 차수벽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다.

이어 2009·2011년·2017년에는 암각화 전방에 생태 제방을 쌓아 국보 침수를 항구적으로 방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됐다.

특히 2011년에는 터널 형태로 대곡천 물길을 변경해 암각화를 보존하는 대책이 추진됐다.

그러나 이들 방안은 '암각화 주변 역사문화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대에 부닥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됐다.

가장 구체적으로 진척됐던 방안이 카이네틱 댐(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다.

이 시설은 수위에 따라 높이 조절이 가능한 투명한 댐으로, 대체 수원을 확보할 때까지 암각화 침수를 막아줄 것으로 기대됐다.

댐을 그대로 축소해 만든 모형으로 실험을 거쳤는데, 투명막 연결부에서 누수가 발생하는 등 수밀성이 떨어진다는 결론과 함께 2016년 실패가 확정됐다.

결과적으로는 모조리 실패한 일련의 대책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이미영 울산시의원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암각화 실측 조사 연구용역 2천만원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학술조사, 수리모형 실험연구, 카이네틱 댐 실험 등 총 18건에 달하는 암각화 보존 관련 사업에 20년간 200억원이 사용됐다.

이 의원은 "20년간 용역과 모형 공사만 하고 아무런 대책을 못 찾았으니 암각화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2014년 8월부터 취수탑을 활용해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댐 수위를 낮게 유지한 것이 그나마 효과를 보고 있다.

암각화 침수 일수를 보면, 2005∼2013년 9년 동안에는 한 해 평균 151일에 달했다.

연간 약 5개월은 물에 잠긴 상태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댐 수위 조절을 적용한 2014∼2020년 7년 동안은 평균 42일로, 109일이나 감소하는 성과가 있었다.

다만 여전히 1개월 하고도 열흘이 넘는 기간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셈이어서, 세계유산급 문화유산에 면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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