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술거장 이우환 "작품은 나와 세계의 앙상블"
예술 에세이집 '양의의 표현' 출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그린 것과 공백이, 또는 그린 것끼리 공백을 매개로 서로 반향하며 하나의 회화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회화의 일어남을 본다."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84)은 최소한의 붓 터치로 울림을 전한다. 그리지 않은 공간은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그려진 것과 대응하면서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이다. 캔버스에 점 하나만 찍은 작품에도 미술애호가들은 열광한다.
이우환이 예술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담은 에세이 '양의의 표현'(현대문학)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그리는 것과 그리지 않는 것과의 관계성이 회화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이어 "여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유(有)가 무(無)와 서로 관계하고 반응하며, 거기서 생기는 장(場)의 힘의 현상"이라며 "내가 회화에서 바라는 것은, 의미나 개념의 제시 이상으로 그것들을 빛나게 하고 생생하게 만드는 하나의 경이적인 장이 열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글쓰기를 멀리한 적이 없다는 이우환이 2002년 '여백의 예술', 2009년 '시간의 여울'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에세이집이다.
'나의 제작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나의 제작은 공간이나 소재와의 최소한의 관계-행위에 의해 이루어진다"며 "이는 나의 생각, 나의 행위의 전지전능함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가 대화하는 속에서 작품이 태어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작품은 나와 세계의 앙상블"이라며 "캔버스의 일부에 그리는 것, 소재에 살짝만 손을 가하는 것과 그리지 않은 곳, 만들지 않은 곳과의 자극적인 만남에 의해 언저리에 울림을 불러일으켜 작품 바깥으로까지 퍼진다"고 말했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 미대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전위예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다. 해외 주요 비엔날레와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그는 세계 무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작가로 꼽힌다.
한국 생존 작가 중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984년 작품 '동풍'(East winds)이 31억원에 낙찰됐다.
책은 작품과 예술에 대한 견해 외에도 일상에서 마주한 것들에 대한 소회, 그동안 만난 예술가들에 대한 기억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그는 "인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문명을 재고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며 "멸망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반성하는 힘과 자제심을 연마해보자"고 제안한다.
세계 미술시장에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사조로 알려진 단색화에 관해서는 "단색화는 가난하고 어둡고 가혹한 상황 속에서, 그야말로 시대의 상징처럼 나타났다"며 "한국에서 단색화가 집단적으로 출현하여 존속하고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경이이자 하나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작가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글을 중심으로 한 이번 책은 그동안 틈틈이 메모해온 단상과 해외 강연 원고, 미발표 원고 등을 수록했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고, 일본어판을 성혜경 서울여대 교수가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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