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재건축 단지 사는 길냥이 이주 과정 담아
"비인간 존재에 귀 기울이는 이야기…우리와 동등한 이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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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 [(주)엣나인필름/(주)메타플레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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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나오는 길고양이 [(주)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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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길고양이 [사진작가 신경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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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에 나오는 길고양이 [(주)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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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 [(주)엣나인필름/(주)메타플레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재건축에 쫓겨나긴 길냥이도 마찬가지…사회적 논의해야"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 감독…재건축 단지 사는 길냥이 이주 과정 담아
"비인간 존재에 귀 기울이는 이야기…우리와 동등한 이웃이죠"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누군가에게는 투기의 대상,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안식처.
대한민국에서 낡은 아파트는 대개 두 가지 효용이 있는 듯하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새 아파트에 살 수 없는 형편의 세입자에게는 따뜻하디 따뜻한 '집'이 된다. 재건축 결정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우는 이유다.
아파트 단지 내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은 어떨까. 고양이들 역시 집을 떠나야 하는 세입자들처럼 어딘가로 밀려나게 된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 일컬어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약 250마리의 길냥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재은 감독은 아파트 주민과 동물보호운동가로 구성된 '둔촌냥이' 회원들이 이곳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이주시키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다.
정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낡은 아파트는 젊은 사람이나 신혼부부가 새 출발을 하는 곳"이라며 "요즘 집값을 고려하면 계속 낡은 아파트만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데, 재건축으로 인해 쫓겨나는 길고양이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보편적인 주제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서울이란 도시는 재개발을 통해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익숙하고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 주변에 사는 수많은 비인간 존재에 대해 관객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는 "오래전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별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은 길에서 사는 생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무르익어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고 했다.
정 감독이 둔촌주공아파트를 찾은 건 이곳에 사는 이인규 작가의 초대를 받은 2016년 가을이었다. 이 작가가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의 기록 작업을 하던 때였다.
그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도 고양이들이 너무 반갑게 맞아준 낯선 경험을 했다"며 "알고 보니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아 친근하고 윤기가 흘렀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때 아파트가 헐리고 고양이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영화로 찍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2017년 5월부터 무려 2년 반 동안 총 80여 회에 걸쳐 촬영했다. 촬영 분량은 350시간에 달했다.
다큐멘터리는 88분으로 편집됐으나 '둔촌냥이' 모임이 만들어지고, 회원들이 이주 방식에 대해 격론을 펼치고, 이주를 실행하고, 허물어진 아파트로 돌아온 고양이들을 돌보는 모든 과정이 그려졌다.
정 감독은 작품에서 둔촌 길냥이들을 집고양이처럼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무조건적인 예쁨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평등한 존재로 바라보되, 최소한의 '보호'를 해줘야 하는 생명체라고 정 감독은 전했다.
"길고양이는 인간한테 반 정도만 의존하면서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나름대로 성장해나갑니다. 우리는 집 안에, 저들은 집 밖에서 살아가는 '동등한 이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재건축이나 공사 같은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면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보호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둔촌냥이 회원들도 대규모 고양이 이주 프로젝트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양이들의 이주 방식이나 어디까지가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인지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그는 "동물에 대한 논의는 함부로 결정하기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라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의견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편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합의하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건 무척 어려워요. 하지만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공동의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로도 소중하지 않을까요."
둔촌 고양이들은 아파트가 헐리며 모두 사라졌다. 입양을 간 일부 고양이들을 빼면 대부분 인근 지역으로 흡수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 감독은 둔촌주공아파트가 대단지인데다 지하실 등 숨을 곳이 많은 환경이라 "몇몇은 철거 현장에서 변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착잡한 얼굴로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일은 길고양이 이주 문제의 시작이자 일부일 뿐, 재건축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직면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감독이 '고양이들의 아파트'로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라, 깨우쳐라'고 주장을 펴는 작품이 아닙니다. 도시에 있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새로운 생각이나 해답이 나와서, 수많은 질문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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