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했던 바흐·브람스·쇼팽…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

Contribution / 임동근 / 2022-03-02 11: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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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c) Felix Broede.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완벽했던 바흐·브람스·쇼팽…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역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짐머만)이었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그는 바흐의 '파르티타' 1·2번, 브람스 세 개의 간주곡,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선사했다.

그야말로 깊이 있는 해석과 균형, 그러면서도 틀에 갇히지 않는 예술가의 자유혼과 신선함, 몰아칠 줄 아는 격정적 에너지를 두루 보여준 대가다운 연주였다.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은 기립해 뜨겁게 화답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일반적인 안내방송과 별도로 장내 방송이 나왔다. 본 공연뿐 아니라 연주자의 등장과 퇴장, 커튼콜, 앙코르 등 공연 진행 시간 전체를 통틀어 그 어떠한 사진 및 영상 촬영이 금지되며 적발 시 공연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휴대전화 전원을 종료한 뒤 가방 혹은 주머니에 넣을 것을 당부했다. 같은 내용을 출입구마다 명시하기도 했다. 완벽주의자요, 음악에 깊이 몰입하기로 유명한 지메르만의 특별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본래 2천 명의 사람이 모인 곳에서 완벽한 '수칙의 준수'란 실현되기 어렵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연주자의 강력한 요청과 주최 측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실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서너 차례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특히 1부에서 울린 두 번의 벨 소리는 음악적인 면에서나 함께한 관객들에게 큰 방해가 되었다.

1부에서 지메르만의 바흐는 아주 특별했다. 바흐의 대가로 잘 알려진 안드라스 시프와 아주 다른, '신선한' 바흐였다. 폴란드인인 지메르만의 호흡 속에 쇼팽의 감성이 흐르고 있음은 익히 알려졌지만, 이날 바흐의 '파르티타'는 '쇼팽이 바흐를 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참고로 쇼팽은 바흐 음악을 스승으로 여겨,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늘 가까이 두었다.

구조적이고, 다소 차갑고, 성부의 움직임을 명료하게 드러내려는 시프의 연주와 비교한다면, 지메르만은 부드럽고 유려했다. 명상적인 부분과 낭만적인 열정이 가미된 부분이 교차하기도 했다.

바로크 모음곡은 통상 여섯 곡의 춤곡으로 이뤄져 있는데, 가볍고도 섬세한 발놀림이 연상되면서도 소리의 울림이 또렷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어 놀라웠다. 학구적인 바흐가 아니라 자유롭고 감성적인 바흐가 그의 손에서 울려 퍼졌다.

'파르티타' 1번의 4곡 사라방드에선 깊은 명상적 흐름을 이어갔다. 5곡과 6곡은 대가답고 탁월했으나 다소 거칠고 격렬한 측면이 더 부각됐다.

'파르티타' 2번에서도 최고의 연주가 이어졌다. 지메르만은 흔들림이 없었고,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했다. 다양한 색채와 뉘앙스가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3곡 쿠랑트의 우아함, 5곡 론도의 절묘한 호흡 변화, 6곡의 격렬함 등은 최고였다. 지메르만은 장식적인 악구와 선율 라인의 호흡을 섬세하게 구분해 아주 세련된 흐름을 빚어냈다.

2부 첫 곡은 브람스의 만년 명작인 세 개의 간주곡으로 시작됐다. 아름다운 연주였다. 지메르만은 다소 긴장된 상태로 귀를 기울이는 관객들을 위해 '편안하게 들으라'는 제스처도 보내줄 만큼 여유로웠다.

켐프를 위시한 독일의 거장들이 내적인 침잠과 고독으로 작품을 해석했다면, 지메르만은 자연스러운 호흡과 시적인 서정성을 강조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자제한 채 작품 본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인상적인 연주였다.

공연의 마지막 곡인 쇼팽은 지메르만이 가진 표현과 색채, 기교의 폭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를 잘 드러낸 명연이었다.

장대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무수한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전체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노련함이 인상적이었고, 2악장에서는 여전히 발랄하고도 싱싱한 그의 손끝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3악장은 경건하고 깊었다. 자기 감상에 빠지는 유약한 연주가 아니라 예민한 균형감각과 올곧음이 있는 단단한 연주였다. 4악장은 듣는 이들을 압도하는 초절기교의 속주였다. 이 한 곡만으로도 지메르만이 왜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찬사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앙코르로 들려준 시마노프스키까지, 공연은 완벽에 가까웠고 행복했다. '별거 아니겠지' 하고 켜 둔 휴대전화 기계음을 빼고 말이다. 공연장에서는 휴대전화를 끄자. 어차피 쓸 일이 없다. 음악회 사진을 남기려는 본말전도를 버리고, 그 순간을 그저 귀와 마음에만 담자.

lied99@hanmail.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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