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감추려해도 쇠꼬챙이처럼 뚫고 나와"…연극 '회란기'

Contribution / 임동근 / 2022-03-06 1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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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 전 이야기로 일침…배우마다 개성 넘치는 연기에 객석 웃음바다
▲ 연극 '회란기' 공연 장면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극 '회란기' 공연 모습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극 '회란기' 공연 모습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거짓은 감추려해도 쇠꼬챙이처럼 뚫고 나와"…연극 '회란기'

700년 전 이야기로 일침…배우마다 개성 넘치는 연기에 객석 웃음바다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법의 심판을 받는 한 여인이 있다. 죄목은 남편 살해와 허위 주장을 통한 재산 편취. 무거운 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인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그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이 극공작소 마방진과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연극 '회란기'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연극, 뮤지컬, 창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고 연출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낙타상자'에 이어 선보이는 세 번째 중국 고전이다. 그는 '각색의 귀재'답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무대를 선사했다. 이야기는 쉬웠고, 무대는 흥겨웠으며, 교훈까지 담아냈다.

'회란기'는 중국 원나라 때인 1200년대 중반 극작가로 명성을 구가하던 이잠부가 쓴 잡극이다. 당시 사회상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생생하게 표현해 연극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작품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네 갑부 마원외의 첩이 돼 아들을 낳는 장해당의 이야기를 다룬다. 본처 마부인은 불륜남과 작당해 남편을 독살하고 장해당에게 뒤집어씌운다. 더구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장해당의 아들을 자기 아이라 주장하고, 산파와 이웃을 매수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한다. 장해당의 무죄 호소에 판관 포청천은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려 아이를 세우고, 장해당과 마부인이 아이를 각자 방향으로 끌어당기게 한다.

금색 기둥 8개가 두른 심플한 무대는 만화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배우들의 과장된 움직임과 신파극을 떠올리는 리듬감 있는 대사로 채워졌다.

'장해당' 역 이서현, '마부인' 역 박주연, '포청천' 역 호산을 비롯한 무대 위 모든 배우는 2시간 동안 열연하며 연극의 재미를 한껏 살려냈다. 배우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연기에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연극이 끝난 후에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연극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끝을 맺는다. 장해당의 억울함은 풀리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벌을 받는다.

고선웅은 "변함없이 쉬운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주는 연극을 하고 싶다. 연극은 예나 지금이나 관객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감동하는 장르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의 의도가 충분히 달성된 듯싶다.

'회란기'는 700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나. 돈으로는 거짓을 감출 수 있고, 진실을 덮을 수도 있다." "돈 있고 줄 있는 사람은 간단히 끝내면서 돈 없는 사람에게는 모질게 하는 세상." "진실은 파묻어도 햇빛에 드러나고, 거짓은 감추려 해도 쇠꼬챙이처럼 뚫고 나온다."

공연은 20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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