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연출로 재탄생한 60년 전 한국오페라 '왕자, 호동'

Contribution / 임동근 / 2022-03-13 08: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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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 국립오페라단 '왕자, 호동'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고구려군과 낙랑군의 전투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왕자, 호동' 무대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현대적 연출로 재탄생한 60년 전 한국오페라 '왕자, 호동'

국립오페라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이한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원년인 1962년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장일남의 '왕자 호동'을 손질해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 11∼12일 양일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60년 만에 다시 선보인 공연을 12일에 만났다. 초창기 한국오페라의 대본과 음악이 어떤 형태였는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고, 특히 가곡 '비목', '기다리는 마음'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장일남의 첫 오페라를 감상할 소중한 기회였다.

초연 당시 음악과 성악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오페라의 구성에 밀도와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았던 작품이다. "흩어진 긴장감, 무리 없는 미술-오페라 왕자 호동"(경향신문), "망각된 우리 정서-오페라 왕자 호동"(조선일보) 등의 1962년 신문 기사 제목을 참고할 만하다.

이 작품의 재연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악보가 제대로 정리·보존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작곡가 전예은은 이번 공연의 편곡과 음악 자문을 맡아 지휘자 여자경과 함께 음악의 틀을 재구성했다.

원래는 없던 서곡을 장일남의 음악을 토대로 작곡했고, 이야기꾼의 내레이션과 출연진의 연기로 관객이 1막 이전의 상황을 이해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12분에 달하는 긴 프롤로그가 새로 제작됐다.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음악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3막 직전에는 고수와 함께 남녀 소리꾼이 등장해 판소리 가창으로 극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렬한 장면을 펼쳐 보였다. 해금의 역할도 두드러졌다.

초연 후 재공연이 불가능해 보였던 작품은 이런 노력으로 재탄생했다. 국립오페라단 '브람스…' 공연의 연출을 맡았던 연출가 한승원, '유쾌한 미망인'을 비롯해 국립오페라단과 여러 차례 작업해온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코너 머피도 이 시대 관객이 즐길 만한 오페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한승원 연출은 대본작가 고봉인의 가사처럼 "불타는 사랑 위해 겨레의 꿈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낙랑공주를 더욱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불타는 사랑'보다 '겨레의 꿈'에 방점을 찍었다. 공주가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하고 자명고를 찢은 것이 호동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 때문만이 아니고 외세를 몰아내려는 호동의 민족주의적 이상에 공감해서였음을 프롤로그 장면을 통해 강조한 것이다.

현대적 연출을 통해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진화했지만, 60년 전 대본의 시대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낙랑과 한나라의 연대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면서 선악의 대결로 극 전체를 끌고 가는 이분법이 이번 작품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당시 주변 정세를 감안한 실리적 외교나 국가 간 힘의 구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무대와 의상, 조명은 단순명료하면서도 세련되고 섬세했다. 황금빛 낙랑의 궁, 검은색과 흰색으로 일관된 낙랑인의 의상은 경직된 사회와 권위주의를 상징한다. 합창의 비중이 커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위너오페라합창단이 거의 연기를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이에 대비되는 호동왕자와 고구려인들의 의상은 희망과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는 밝은 파란색이다.

자명고를 무대 위에 실물로 등장시키지 않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자명고를 찢으러 나선 공주가 가는 붉은색 길이 사선으로 아래 쪽을 향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파멸을 향해 가는 열정의 길이다.

여자경이 이끈 클림오케스트라는 작곡가 장일남의 극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긴장감 있게 살려냈다. 호동왕자 역의 테너 김동원은 최고의 성악적 역량을 발휘하면서 배역의 분노와 격정과 슬픔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낙랑공주 역의 소프라노 김순영은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장일남 음악의 가곡적인 요소와 드라마틱한 면을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낙랑의 왕인 최리왕 역의 테너 정의근은 탄탄하고 안정적인 가창과 박력 있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았고, 한나라 장초 장군 역의 베이스 박준혁은 뚜렷한 존재감으로 악역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무고수 역 베이스 이준석의 명료하고 밀도 있는 가창도 돋보인 무대였다.

rosina@cho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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