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단 한마디라도" 일제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의 바람

Heritage / 박철홍 / 2024-01-18 11: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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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에 승소, 정신영 할머니 "손해배상도 일본에서 해야"
▲ 눈물 닦는 강제동원 피해자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정신영 할머니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소회를 밝히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4.1.18 iny@yna.co.kr

▲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승소한 정신영 할머니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법에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인 정신영 할머니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4.1.18 iny@yna.co.kr

"미안하단 한마디라도" 일제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의 바람

전범기업에 승소, 정신영 할머니 "손해배상도 일본에서 해야"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원고 정신영에게 미쓰비시중공업은 1억원을 지급하라."

재판장 선고를 들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4) 할머니는 믿기지 않은 듯 어리둥절했다.

옆에서 할머니를 부축하던 지원단체 관계자가 "할머니 이겼어요. 승소했어요"라고 귀엣말해주자 그제야 조금은 회한이 풀린 듯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18일 광주지법 별관 법정에서 민사13부 임태혁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4) 할머니 등 원고 4명에게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1천600만~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8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기업에서 강제 동원 노동을 한 피해자들이 2차 집단 소송에 나서 1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원고 중 한 명으로 이날 법정에서 직접 판결을 들은 정 할머니는 휠체어를 탄 채 법정 밖에 나와 80년 전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일본 생활을 떠올렸다.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는 일본인 교사의 거짓 회유에 속아 1944년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고된 노동을 했다.

폭격으로 공장 지붕은 불이 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지붕에 올라 불을 끄기도 했다.

지진에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 땅에서 물이 솟구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일본으로 함께 건너간 또래 친구 6~7명을 바로 옆에서 잃었다.

해방 후 겨우 귀국해 여생을 살 수 있게 됐지만, 정 할머니 등의 요구에 일본 측은 연금(노동자 연금보험) 탈퇴 수당으로 고작 931원(99엔)을 지급해 공분을 샀다

만 94세의 나이가 돼 '갈 날밖에 안 남은 노인'이라고 스스로를 낮춘 정 할머니는 일본과 일본 기업의 사과 한마디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승소 소감을 대신했다.

정 할머니는 "일본 측이 대한민국 소녀들을 어릴 적에 데려가 고생 많이 시켜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며 "손해배상도 일본 측에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일본이 전쟁을 치르느라 배고프고 곤란해 못했더라도, 이제는 일본도 일본기업도 부흥해 잘살고 있으니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해주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소송을 지원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광복 79년 만에 쟁취한 오늘의 정의가 상처 입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알 수 없다"며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의 판결 앞에 일본 정부도 자숙하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소송은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1차 소송 확정 이후 제기된 2차 집단소송 중 하나다.

정 할머니 등의 2차 소송은 2020년 제기됐지만, 일본기업에 송달이 안 되는 등 이유로 장기간 지연되다 이제야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미쓰비시 측 항소가 예상돼 확정판결 시기나 일본 기업 측 보상 여부 등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적으로는 일본 기업 상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63건이 제기돼, 확정 판정을 받은 9건을 제외한 54건 소송이 전국 법원에 계류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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