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맑고 아름다운 사람…리허설 때 걸음 수까지 계산해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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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태지 모든 공연 기획한 서울기획 이태현 회장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공연기획자 서울기획 이태현 회장이 경기도 양평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3.7 tsl@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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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서태지 블라디보스토크 공연 [연합뉴스 자료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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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4년 서태지와아이들 콘서트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서태지 30주년] ② "신문지 깐 바닥에서 자장면 먹고 무대에"
공연 전담한 '29년 지기' 이태현 회장…"첫만남서 분장실 있냐길래 충격"
"서태지, 맑고 아름다운 사람…리허설 때 걸음 수까지 계산해 놀라"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1993년 서태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의 첫 마디가 인상적이었어요. '저희도 공연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하다고 했더니 얼굴이 활짝 피었지요."
우리나라 대중음악 공연의 산 역사로 꼽히는 서울기획 이태현 회장(80)은 오래전 일인데도 가수 서태지와의 첫 만남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서태지와아이들 2집 콘서트를 시작으로 서태지의 모든 공연을 기획한 인물로, 지난 29년간 누구보다 그를 가까이에서 본 인물 가운데 하나다.
이 회장은 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서태지를 밤 10시 한 특급호텔 바(Bar)에서 만났다"며 "시간은 본인에게 맞췄겠지만, 장소는 나를 배려한 느낌을 받아 친밀감이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공연 기획 제의를 수락했더니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이 들어왔다. 이미 1년 전 '난 알아요'로 전국을 뒤집어놓은 슈퍼스타치고는 다소 충격적인 부탁이었다.
"그다음 질문은 '그러면 저희 분장실은 따로 있나요?'였어요.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공연한 거냐는 생각에 저로서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지요."
이 회장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21세 청년 서태지는 "분장실에 의자가 하나도 없어서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앉아 자장면을 먹고 무대에 올라갔다"고 답했다고 한다.
공연에 초대된 손님들이 의자를 다 차지하는 바람에 정작 '주인공'이 분장실 바닥에 앉아서 끼니를 때워야 했다는 이야기다. 1990년대 초, 지금처럼 대중음악 공연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을 시절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회장으로서는 놀라웠다.
그때 서태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걱정 말고 나에게 맡겨 주면 만족할 만큼의 수준이 될 것이다."
이 회장과 '문화 대통령'의 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회장은 "사실 나는 서태지와아이들 1집 공연 티켓을 직접 사서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본 사람"이라며 "나와 인연이 있었다면 내가 훨씬 좋게 꾸며줄 수 있었을 터라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서태지를) 직접 만나게 되니 그때 부족해 보였던 것을 다 채워주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다"고 되돌아봤다.
"청년 서태지의 첫인상은 맑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젊은 청년에게 어색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이 회장은 이후 서태지와아이들의 모든 콘서트를 비롯해 2000년 국내 복귀 이후로는 서태지의 솔로 콘서트를 도맡아 기획해왔다. 2017년 그룹 방탄소년단과 한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은 25주년 기념 콘서트도 그가 제작총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그는 "서태지와아이들 이전에는 댄스를 선보이는 그룹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이들로부터 새로운 문화가 창출되니 내 입장에서도 아주 경이롭게 보였다. 음악적인 기준으로도 무척이나 새로웠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연이라는 것은 스타만의 역량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공연기획사의 퀄리티에 따라 좌우된다"며 "서태지와아이들 1집 콘서트와 내가 함께 한 이후인 2집 콘서트의 퀄리티 차이는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서태지와의 에피소드를 물어보니 2집 콘서트 무대를 떠올렸다. 공연 시작 15분 전부터 '스탠 바이'를 외치고 공연 시간이 돼 '5, 4, 3, 2, 1, 큐'를 외쳤지만 출연자 준비가 덜 돼 공연이 10여 분 늦게 시작돼버린 것이다. 많은 무대를 기획한 그로서도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너무나 놀라 분장실로 뛰어 가봤더니 그때까지 스타일리스트가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며 "정시 시작을 본인에게 주지시켜주지 못한 내 실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공연이 30분, 1시간, 1시간 30분 지연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사건 이후로 서태지 콘서트는 '저스트 온 타임'(정시)에 진행되는 모범적인 전통이 계속 지켜지고 있다"며 "그때로서는 정시에 공연이 시작한다는 것은 혁신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이 전하는 서태지 공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음향'이다.
그는 "서태지는 굉장히 헤비(Heavy)하고 라우드(Loud)한 사운드를 선호한다"며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사운드의 퀄리티를 체크하고 또 체크한다"고 말했다.
"어느 콘서트에서 서태지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무대 등장 후 이동할 때 걸음걸이 수와 시선 처리가 리허설을 거듭해도 항상 일치하는 거예요. 걸음 하나 그냥 가는 게 아니라 세심하게 구성하고 계산한 것이죠. 거기서 제가 놀랐습니다."
이 회장은 1996년 1월 세간을 뒤흔들었던 서태지와아이들의 은퇴 기자회견 때도 현장을 지켰다. 자신도 서태지가 훌쩍 떠나리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는데, 기자회견을 한다길래 달려갔더니 은퇴 발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나도 당시 충격을 받았지만, 이해는 했다. 그의 의사를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발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해주었다"고 말했다.
서태지와 이 회장은 2004년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무료 포함 3만5천석을 이틀 만에 매진시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K팝의 세계화 바람이 불기 이전 한류의 '동토'와도 같던 러시아에서 일궈낸 기록이다.
"러시아 현지 장비가 우리가 기대한 수준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 갔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학이 많고 젊은이들이 록을 좋아한다는 점에 주목해 2주간 유료 광고를 한 점이 주효했습니다. 공연 당일 현지 행정당국의 조치로 5천명 밖에 입장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매우 안타까워요."
이 회장은 그러나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이 빌딩 위나 건물 지붕에 올라가서 공연을 관람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며 "당시 온 블라디보스토크 시내가 열광과 감동, 축제의 분위기로 넘쳐났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2000년대 들어 서태지가 개최한 록 페스티벌인 ETPFEST도 메릴린 맨슨, 림프비즈킷 같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섭외해 명성을 크게 얻었다. 이 회장은 비용 문제 등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평소 록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던 서태지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했다고 한다.
그는 "서태지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온 자신의 경험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성실하게 전달하는 음악인"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서태지 데뷔 30년을 맞아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니 통일을 염원한 서태지와아이들 3집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발해를 꿈꾸며'를 듣다 보면 애국심이 고양되지 않으세요? 저는 좋은 노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태지와아이들이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대형 태극기가 무대 뒤로 올라간 장면은 제 아이디어였답니다. 하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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