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과 함께 잘려나간 나무와 추억…다큐 '봉명주공'

K-DRAMA&FILM / 김계연 / 2022-05-10 16: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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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감독 "집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자 성찰"
▲ '봉명주공'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봉명주공'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봉명주공' [시네마 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재건축과 함께 잘려나간 나무와 추억…다큐 '봉명주공'

김기성 감독 "집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자 성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여기저기 벗겨지고 때가 탄 외벽에 덩그러니 적힌 숫자와 단층 주택 모양의 심볼.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 또는 기와를 얹은 2층짜리 아파트.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렸고, 어느 집 현관에는 이사 기한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된 듯한 주공아파트 단지에는 이제 인적이 드물고 재건축조합 사무실만 붐빈다.

요즘 아파트 단지처럼 보기 좋게 인공적으로 심어진 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아파트와 무관하게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듯 가지를 풍성하게 뻗은 버드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뜰채로 감을 딸 수 있는 아파트 단지는 이제 얼마나 남아있을까.

'봉명주공'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아파트 단지의 풍경과 곧 그곳을 떠나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은 몇 년 뒤 무슨 파크니 팰리스니 하는 번듯한 영어 이름의 아파트를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결혼해서 처음 내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집장가도 보낸 인생사를 함께 해온 아파트다. 어디 가도 이보다 편한 집을 구하기 힘든데, 재건축을 밀어붙이는 조합이 밉기만 하다.

나무들은 너무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린 탓에 결국 옮겨지지 못하고 베어진다. 나무 밑동을 잘라 쓰러뜨리는 전기톱의 굉음은 야속하기만 하다. 충북 청주시 봉명주공 1단지는 이제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단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나고 자란 동네의 꽃과 나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과 닮았다.

봉명주공 단지에는 특이하게 단층 아파트도 지어졌다. 시골 같은 분위기의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은 허물없이 어울려 살았다. 지금은 주변 고층 아파트나 주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영화는 오늘날 자산 증식의 도구 또는 계층을 가르는 역할에 치우친 집의 본래 의미를 꽃과 나무에 빗대어 묻는다.

김기성 감독은 구도심을 중심으로 지역의 사라져 가는 장소를 찾다가 봉명주공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사계절과 함께 식물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며 "거시적인 이슈를 다루기보다 동네가 갖고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중심으로 찍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아파트가 독립적 주거환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면, 봉명주공은 사람들을 분리하기보다 서로 연결하고 공동체를 형성한 아파트"라며 "봉명주공이라는 사라져버린 공간이 집의 의미에 대한 탐구이자 성찰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일 개봉. 83분. 전체관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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