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닉과 상상력이 불러낸 깊고 입체적인 시벨리우스 협주곡

Contribution / 김용래 / 2023-03-25 16: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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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스케 전 서울시향 감독, 바티아슈빌리와 시벨리우스 작품들 선보여
3년간 시벨리우스 널리 알려…충분한 가능성 보여준 벤스케와 서울시향
▲ 서울시향 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 [서울시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시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테크닉과 상상력이 불러낸 깊고 입체적인 시벨리우스 협주곡

벤스케 전 서울시향 감독, 바티아슈빌리와 시벨리우스 작품들 선보여

3년간 시벨리우스 널리 알려…충분한 가능성 보여준 벤스케와 서울시향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2020년부터 서울시향을 맡아 거장다운 수준과 깊이를 보여줬던 오스모 벤스케 전 음악감독.

3년여의 팬데믹과 작년 연말에 당한 불의의 낙상 등 그와 서울시향의 다사다난했던 동행은 다소 아쉬운 그늘을 남긴 채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외트뵈시·폴 치하라·신동훈 등 같은 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윤이상의 작품을 음반화한 것, 이전까지 국내에서 감상할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시벨리우스 등을 널리 알린 것은 벤스케 3년의 특별한 소득이었다.

24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공연은 모두 벤스케의 장기인 시벨

리우스의 곡들로 채워졌다.

1부 첫 곡은 핀란드의 역사를 소재로 한 '카렐리아 모음곡'으로 단순한 음악적 어법을 효과적인 관현악법으로 펼쳐 보였다.

서울시향은 산뜻하게 출발했다. 팡파르로 시작해 당당한 행진과 춤곡의 신명이 어우러지는 첫 곡 인테르메조(간주곡)는 다소 직선적이었지만 에너지가 넘쳤고, 현악의 장중하고도 정감 어린 선율이 인상적인 두 번째 곡 발라드도 입체적으로 연주됐다. 축제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곡 또한 하나하나 추가되는 리듬 요소들을 선명하게 포착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벨리우스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난 명작으로 꼽힌다. 이 곡은 이번 공연을 위해 내한한 조지아의 바이올리니스트 리사 바티아슈빌리가 강한 면모를 보이는 곡이기도 해서 시벨리우스 대가 벤스케와의 조합이 어떨지 많은 기대를 모았다. 과연 바티아슈빌리는 테크닉 면에서나 음악 면에서 발군의 기량을 확인시켜줬다.

전곡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양하게 활을 쓰고 소리 하나하나에 색다른 뉘앙스와 리듬 변화를 능숙하게 부여하면서도 전체적인 호흡에는 줄곧 여유와 안정감을 잃지 않는 면모였다.

강인하고 기민하면서도 음악적 라인을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감수성 넘치는 보잉(bowing·현악기를 활로 연주하는 법)도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에 홀로 맞서는 파워를 보여주거나 오케스트라에 녹아들었다가 떨어져 나오기를 반복한 입체적 연주였다.

안개처럼 일렁이는 하모니의 음향 위에 펼쳐지는 1악장의 어두운 첫 주제나 관현악이 마치 생략된 듯한 음악적 공허를 뚫고 나오는 서정적인 2주제 모두 개성 있고 아름다웠다. 명상적인 2악장의 나직하고 관조적인 선율도 그렇고 3악장의 생명력 넘치는 거친 춤곡의 리듬도 훌륭했다.

하지만 독주자의 역량에 비해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다소 아쉬웠다. 기술적 차원에서 보면 악단은 악보에 명시된 내용을 그때그때 수행해내기는 했고 2악장은 상대적으로 훌륭했다. 그러나 악구의 개시 부분이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고, 또 관현악 총주가 음악을 이끌어가는 몇몇 부분과 뒤로 물러나 있는 부분 사이의 긴장감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1악장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솔로와 비올라 사이의 '대화 장면' 효과가 약했다.

3악장 말미에서 바이올린이 마치 휘파람 소리 같은 고음을 낼 때는 약음기를 단 관악이 너무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 소리를 침해하고 말았다. 확연히 귀에 들어오는 큰 실수는 없었지만, 이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세부적인 뉘앙스를 놓치다 보니 전체적으로 산만한 인상이었고, 독주와의 시너지가 발생하기 어려웠다.

2부에서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6번이 연주됐다. 악상이 마치 여러 개의 레이아웃을 가진 것처럼 겹치고 전환되는 효과가 인상적이고 싱그러운 전원의 아름다움과 북구적인 어두움, 생동하는 리듬과 둔중한 화음층의 대비가 전체를 지탱하는 음향 이미지를 지닌다. 첫 부분에서 이러한 이미지가 신비롭게 재현됐지만 아쉽게도 그 뒤에 깨어나는 자연의 생동하는 에너지는 선명하게 리듬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2악장에서는 음향 층과 악구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정중동(靜中動)의 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전반적으로 급하고 정확도가 조금씩 부족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있을 때도 전체 곡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어야 하지만, 집중력 및 몰입도가 떨어졌고 연주는 기술적이었지만 전체의 음향과 컨셉을 떠올리는 상상력이 아쉬웠다.

3악장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고, 4악장의 첫 부분, 곧 찬가 풍 주제가 나오는 부분까지는 좋은 흐름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추동력 있는 상행 모티브가 긴장감을 얻으며 변형·발전하는 두 번째 부분은 정밀하지 못했고, 처음의 찬가 풍 주제가 끼어들 때마다 악상들이 충분한 응집력으로 결합하지 못했다. 그래서 찬가 주제가 체념조로 바뀌고 끝을 흐리듯 해체되는 작품의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기술적인 연주를 뛰어넘어,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작품의 이해와 해석에 더 깊이 다가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 준 연주였다.

벤스케와의 3년을 통해 한국 관객들은 시벨리우스를 새로 만났다. 비록 부족함이 있었지만 이날 연주 또한 새로운 도정의 일부일 것이다.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생소한 작품에도 지속적으로 성원을 보내면 오늘의 아쉬움이 내일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쌓여갈 것이다. 벤스케와 서울시향은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

lied99@hanmail.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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