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않는 '불후의 명작'에 반기…삭고 분해되는 미술품展(종합)

Travel / 박의래 / 2026-01-29 15: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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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지고 바래지는 회화, 흙으로 돌아가는 조형물…"미술의 관념 전환"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소멸의 시학'…15팀·50여점 선보여
▲ 흙ㆍ풀ㆍ바람ㆍ곰팡이 등 '삭는 미술에 대하여'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 관계자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자신의 분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2026.1.29 mjkang@yna.co.kr

▲ 나무 패널에 달걀 노른자 작품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 관계자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자신의 분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2026.1.29 mjkang@yna.co.kr

▲ 작품 설명하는 아사드 라자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2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 아사드 라자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6.1.29. laecorp@yna.co.kr

▲ '향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9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에서 관계자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자신의 분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소개한다. 2026.1.29 mjkang@yna.co.kr

▲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전시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변치않는 '불후의 명작'에 반기…삭고 분해되는 미술품展(종합)

갈라지고 바래지는 회화, 흙으로 돌아가는 조형물…"미술의 관념 전환"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소멸의 시학'…15팀·50여점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불후의 명작이란 말에서 '불후'(不朽)는 썩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술관 입장에선 작품이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다.

하지만 오는 30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이런 상식을 정면으로 뒤흔드는 전시다.

제목에 담긴 '삭다'라는 말에는 '썩다'와 '발효돼 맛이 들다'는 의미가 동시에 담겨 있는데,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가 힘들게 만들었지만 썩히고 변형시키기로 마음먹은 것들이다.

전시에 참여한 고사리,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 아사드 라자, 유코 모리 등 국내외 작가 15명(팀)은 '훌륭한 작품이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통념이 과연 동시대에도 유효한지 질문한다. 이들은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풀어낸다.

이주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고 수집과 보존이 어려우며 시간이 갈수록 상품가치가 퇴색하는 작품들"이라며 "미술의 관념을 전환하고 생산과 소비, 축적이란 질서에서 탈피하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시작은 이은재(37)의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이다. 나무 패널에 달걀노른자를 한 겹 한 겹 쌓아 올렸다. 패널마다 다른 달걀을 써서 노란색이어도 조금씩 다르다. 노른자로 만들다 보니 쉽게 갈라지고 바래진다. 그림이라는 것이 완전할 수 없으니 사라져도 좋다는 안도와 그래도 한동안은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여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아사드 라자(52)의 작품 '흡수'는 흙이 작품이다. 그는 커피 찌꺼기, 택배 상자, 닭 뼈, 은행, 이면지, 전선 피복, 튀김 부스러기 등 전시가 열리는 도시에서 얻은 부산물로 비옥한 토양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작품을 구현할 경작자들을 모집했다. 경작자들은 전시 기간 부산물이 흙으로 바뀌도록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날도 2명의 일반인 경작자가 은행과 닭 뼈를 갈아 만든 부산물을 흙과 섞고 있었다. 관람객은 이 흙을 밟으며 통과해야 다음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라자는 "대부분의 작품은 전시가 열리기 전 제작이 끝나지만 이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작업이 계속된다"며 "관람객이 와서 경작자들과 대화하고 흙도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경(43)의 벽화 '소멸의 빛'은 바다에 사는 조류에서 추출한 스피룰리나라는 안료를 사용한 작품이다. 이 안료는 빛에 취약하기 때문에 햇빛에 4주 정도 노출되면 색이 완전히 바래진다. 전시장에는 태양광 전구가 설치돼 있어 전구 빛을 받은 벽화는 전시 기간 점점 사라지게 된다.

작가 여다함(42)은 뜨개질 작업을 하는 작가다. 하지만 이번에 출품한 '향연'은 연기가 주인공이다. 뜨개질로 만든 '향로'에 향을 피운 뒤 연기에 조명을 비춰 춤추는 연기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한다.

여다함은 "나의 뜨개질은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손놀림의 리듬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손놀림의 리듬이 뜨개질로 나오듯 향이 타는 리듬이 연기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외 전시장에서는 고사리(44)와 김주리(46)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고사리의 초사람은 눈사람처럼 제초된 풀로 만든 사람이다. 전시에서는 미술관 정원 곳곳에서 제초한 풀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김주리의 '물 산'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파트의 모습을 흙을 다져서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야외에 전시돼 눈과 비, 바람에 노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해체되며 작품에 새싹이 돋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의 대화', '초사람 만들기' 등 다양한 연계프로그램도 마련했으며 촉지도(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만든 지도)를 제작해 작가들이 사용하는 대안적 재료를 촉각으로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배우 봉태규는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환경 인식을 반영한 미술작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미술관의 모델을 상상하려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5월 3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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