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뉴스] 어원으로 배우는 '용인' 탐구생활
지명에는 그 지역을 알려주는 정보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경기도 용인으로 가 볼 텐데요.
용인은 '용구현(龍駒縣)'의 '용'과 '처인현(處仁縣)'의 '인'을 따온 합성어입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지명이 정해졌다가 이후 1914년 양지군(陽智郡)을 합쳐 '용인군'으로 통합됐고요.
1996년에 '용인시'로 승격했습니다. 2020년부턴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로 인정받아 '용인특례시'로 불리고 있습니다.
용구현과 처인현 중에서 먼저 '용구현'.
용구현은 고려 건국 이후에 붙은 이름으로 태종 14년 용구와 처인현을 합쳐 용인현이 됐습니다.
이전에는 멸오, 구성, 거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죠.
소속도 자주 바뀌었는데요. 한강 유역과 멀지 않았기에 삼국시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영토의 귀속이 달라졌죠.
지명이 자주 바뀐 건 그만큼 용인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인데요.
용인은 예로부터 평야와 산지가 두루 발달하고 경안천, 탄천 등 여러 물줄기가 지나 사람이 살기 좋았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이 수도로 정해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사대부 가문이 터를 잡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교통의 요지로 인식되었기에 전쟁의 역사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동서와 남북을 잇는 중심지에 위치해 군사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고요.
용인의 '인'을 뜻하는 '처인현' 하면 떠오르는 전투, 있으신가요?
바로 '처인성 전투'입니다.
13세기 고려 시대, 원나라의 침입에 대항해 큰 승리를 얻은 전투죠.
당시 처인성은 오늘날의 수원과 화성 일대에 해당하던 수주(水州)에 속한 지역이었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노동하던 '향·소·부곡'.
주로 농사를 짓고 살던 처인 부곡민은 승장 김윤후 스님과 힘을 합쳐 원나라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처인부곡은 처인성 전투에서 승리한 얼마 뒤 처인현으로 승격됐고 부곡민은 평민이 됐습니다.
지리적 이점이 커서 역사적 교류의 증거도 다양하게 간직하고 있는데요.
용인의 별칭이 박물관의 도시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옥을 거닐며 처인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고 배울 수 있는 박물관도 있는데요. 처인성 역사교육관입니다. 처인성 전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실감 영상이 마련돼 있습니다.
오늘날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신갈분기점이 생겨 교류가 더 활발해지는 용인.
2000년 당시만 해도 인구가 39만 명이었는데요. 지금은 인구 11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가 됐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갖춘 박물관의 도시, 용인.
용한 인싸, 용인 탐구생활!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유세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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