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배고픈 이웃 위해"…채소 팔아 번 돈으로 빵·과일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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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희(오른쪽)씨와 임남순씨 부부 [완주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배 곯던 시절 생각에…농사지은 쌀 30년 넘게 기부한 박승희씨
하늘 빙빙 돌던 배고픔 잊지 못해…1천600평에 농사지어 기부
"여전히 배고픈 이웃 위해"…채소 팔아 번 돈으로 빵·과일 기부
(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1940년대 전북 완주군 비봉면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꼬마는 제때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다섯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주린 배는 시냇물로 채웠다.
지천의 쑥을 뜯어 먹어도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그나마 배고픔이 덜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빙빙 돌았다.
배고픈 설움은 어린 꼬마에게 너무 가혹했다.
아이는 결심했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끼니 걱정에서 벗어나겠노라고.
논밭을 피, 땀, 눈물로 일군 꼬마는 주변의 논밭까지 사들이며 어엿한 농부로 성장했다.
40대 초반이던 1990년대, 1천600평의 논을 사들여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신동진 벼를 재배했다.
먹을 물이 부족하던 갈수기에도 이 논에 먼저 물을 댔다.
정성으로 키워 수확한 쌀 전부는 경로당이나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했다.
장성한 꼬마는 어린 시절 배곯던 한을 이렇게 풀었다.
그때를 떠올린 박승희(76)씨는 "설움 중에 배고픈 설움이 가장 컸다"며 "그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해 악착같이 품을 팔아 논밭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마흔 초반 무렵, 가장 입지가 좋은 땅에 벼농사를 지었고 처음으로 쌀을 기부했다"며 "여전히 배고픈 이웃들을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기부는 그로부터 30여년 동안 꾸준했다.
가정의달인 5월과 혹서기인 7월, 연말인 12월에 해마다 기부했다.
남은 쌀은 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점심을 제공하는 대학교 앞 식당에 줬다.
이렇게 기부한 쌀의 규모와 금액은 알 수 없다.
되는대로 여기저기 나눠줘서 한 번도 계산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박씨는 "좋은 품종의 쌀을 재배하다 보니 간혹 이걸 탐내는 분들이 팔라고 한 적도 있다"며 "좋은 쌀은 기부해야 하니까 단 한 톨도 팔지 않았다"고 웃음 지었다.
2남 1녀를 모두 출가시킨 박씨는 요즘 동갑의 아내 임남순씨와 완주 고산시장,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번 돈으로 빵과 과일을 산다.
이또한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박씨는 시장에서 '빵 아저씨'로 통한다고 한다.
박씨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진 것을 다 주지 못해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며 "힘이 닿는 한 이런 분들의 옆에 든든하게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안형숙 비봉면장은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이렇게 이웃에게 베푸는 박씨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며 "그의 마음을 본받아 소외계층을 더 살뜰히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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