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잡아두는 괴물 같은 각본…영화 '우연과 상상'

K-DRAMA&FILM / 오보람 / 2022-04-27 10: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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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 영화 '우연과 상상'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우연과 상상'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우연과 상상'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우연과 상상'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관객을 잡아두는 괴물 같은 각본…영화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영화를 극장이 아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보는 게 당연해진 시대. 누군가는 마블 히어로물 같은 대형 할리우드 영화만이 극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신작 '우연과 상상'을 통해 극장용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화려한 액션이나 CG도 없고 멋 부린 촬영 기법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심지어 한 장소에서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만 길게는 수십분간 내내 보여준다. 스트리밍으로 봤다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 모니터를 닫아버릴지도 모르지만, 극장에 앉아 집중해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오직 대사만을 통해 쌓아 올려지는 서스펜스는 어느 액션 장면 못지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어느새 '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을 만큼 괴물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작 '해피 아워'(2015), '아사코'(2019),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등에서 그랬듯, 감독은 이번에도 오직 각본의 힘으로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잡아둔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트로피를 가져가며 평단의 갈채를 받았다.

옴니버스로 구성된 영화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제1화 '마법(보다 불확실한 것)'에는 헤어진 연인 사이인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와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가 등장한다. 메이코는 절친한 친구 츠구미(현리)가 마법처럼 만났다고 자랑하는 새로운 남자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 카즈아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2년 만에 그를 찾아간다.

제2화 '문은 열어 둔 채로'의 관계는 좀 더 독특하다. 늦깎이 대학생 나오(모리 카츠키)는 내연남 사사키(카이 쇼마)의 부탁을 받고 교수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를 유혹하려 한다. 세가와의 연구실을 찾아가 그의 신작 소설에 나오는 성행위 묘사 부분을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내려간다.

제3화 '다시 한 번'은 첫사랑을 보고 싶어 여고 동창회를 찾은 중년 여인 나츠코(우라베 후사코)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동창회에서 허탕을 친 그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역을 가던 중 그리고 그리던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마주친다.

영화 제목처럼 각각의 관계는 우연의 중첩으로 맺어졌다가 상상으로 확장 혹은 축소된다.

츠구미와 함께 차를 마시던 메이코는 우연히 찻집 앞을 지나던 전 남자친구 카즈아키를 만나자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나오는 교수를 유혹하는 목소리가 담긴 파일을 다른 사람 이메일로 보냈다가 이혼당한다. 나츠코는 아야가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아야 역시 다른 사람과 나츠코를 혼동한 것이란 걸 알게 되지만, 두 사람은 마치 그 사람인 듯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세 단편은 언뜻 홍상수 감독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극의 처음과 끝에 삽입되는 클래식 음악과 갑작스러운 클로즈업 그리고 한정된 장소에서 오직 이야기로만 승부를 한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우연과 상상'은 작가주의 색채가 매우 짙은 홍 감독 작품보다는 좀 더 보편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영화 속 인물이 처한 상황이지만 언젠가 관객 역시 경험했거나 상상이라도 했을 법한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는 셈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대사와 스토리에 배어 있다는 게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우연과 상상으로 인생을 다채롭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다시 한번 우연과 상상으로 맺어지고 확장하는 관계의 힘을 일깨워준다.

하마구치 감독은 "우연이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이고, 반대로 말하면 이 세계를 그리는 것은 우연을 그리는 것"이라며 "우연을 다룸으로써 희극성이 태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우연을 주제로 한 단편 4개가 더 있다며 "40대가 끝나기 전에 시리즈를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5월 4일 개봉. 상영시간 121분. 15세 관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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