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에게 배운 재야 선비의 야담집 '만오만필' 발간

Heritage / 박상현 / 2021-12-23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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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출신 정현동이 야담·실화 194편 엮어


안정복에게 배운 재야 선비의 야담집 '만오만필' 발간

남인 출신 정현동이 야담·실화 194편 엮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에 많이 편찬된 야담집은 '이야기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당대에 떠돈 흥미로운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노론 지식인이 많이 저술했는데, 남인이 남긴 야담집이 최초로 발굴됐다. 조선 후기 문인 안정복의 제자이자 경기도 광주의 재야 선비였던 정현동(1730∼1815)이 쓴 '만오만필'(晩悟謾筆)이다.

성균관대 출판부가 펴낸 신간 '만오만필'은 연세대 학술정보원이 소장한 동명의 한문 서적을 처음으로 번역한 책이다. 연세대 만오만필은 유일본으로, 정현동이 직접 쓴 책은 아니고 그의 후손이 베낀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만오만필은 저자가 무명의 남인 사대부였다는 사실과 야담뿐만 아니라 역사와 관계된 실화도 기록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무인 집안의 후손인 정현동은 여러 차례 문과 과거에 응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그는 같은 지역에 거주한 안정복에게 학문을 배웠고, 안정복 아들인 안경증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안정복은 역사와 지리에 해박했고,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역사를 기술한 '동사강목'을 짓기도 했다. 그는 정현동에 대해 "문예에 능하다"고 평가했다.

대표 역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서설에서 "정현동은 안정복의 역사학 연구를 이어받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며 "안정복이 조선왕조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열조통기'를 마지막까지 정리한 제자가 정현동이었다"고 강조했다.

정현동은 이야기 194편이 담긴 만오만필을 두 부분으로 구성했다. 상권 '이어'(俚語)에 야담 86편을 싣고, 하권 '고사'(古事)에는 옛날 실화 108편을 소개했다.

상권 이야기 소재는 남녀의 기이한 만남과 출생의 비밀, 재산 다툼과 소송, 귀신과 도적, 과거 시험과 길흉화복, 보은과 복수, 호환(虎患)과 전란 등 다양하다.

안 교수는 "상당수 이야기는 다른 야담집에서 확인할 수 없고, 소재가 비슷하다고 해도 줄거리나 표현에서 차이가 크다"며 "정현동은 노론 지식인과 교류가 드물었기에 그의 야담집은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소재와 구성, 표현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권은 역대 군주 행적, 명재상과 명문가 일화, 친가와 외가 인물의 행적, 친구들에 얽힌 이야기 등으로 채웠다. 특히 비중 있게 다룬 인물은 조선 성종, 정승 정광필, 자신의 선조인 정언충, 지방관 이지광이다.

정현동은 이지광에 대해 "고을을 잘 다스린 지방관으로 첫손에 꼽힌 분"이라며 "의혹을 해결하고 분명하게 살피는 능력에서는 천년에 이 한 사람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권에는 우리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선비들을 한탄하는 내용도 있다. 그는 "'누가 동국통감을 읽어보겠는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이니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안 교수는 "하권에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일화가 많지만, 상권에 비해 이야기로서 흥미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는다"며 "정현동은 이야기를 서술한 다음 논평하기도 했는데, 보수적 유자(儒者)의 관점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번역은 여러 연구자가 참여한 강독 형태로 이뤄졌다. 안 교수 외에도 김세호 원광대 연구교수, 김종하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임영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임영길 단국대 한문교육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이 작업을 함께 했다.

680쪽. 3만6천 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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