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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자 지영 작가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25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빌딩 연우홀에서 열린 제9회 수림문학상 시상식에서 장편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으로 수상한 지영(37·본명 최지영)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림문학상은 소설 문학을 이끌 차세대 작가를 발굴하고자 지난 2013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공동 제정했다. 신인과 등단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기성작가의 미발표 장편소설만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5천만 원이다. 2021.11.25 jobo@yna.co.kr |
언어는 실존의 문제…수림문학상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사고 뒤 깨어나 낯선 언어로 말한다면' 기발한 설정에 실험적 필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제9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지영(본명 최지영·37) 작가의 장편소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이 연합뉴스 출판 브랜드 광화문글방을 통해 출간됐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테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뒤 깨어난 인물이 처음 접해보는 낯선 언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심사위원단은 사고 뒤 다른 환경에 놓이는 설정은 낯설지 않지만 그것이 '말'이란 점,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윤후명, 성석제, 정홍수 등이 참여한 심사위원단은 "모국어를 잃고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몸에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바뀐 것과 같아 결국 이 세계에서 고립되고 먼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언어에 대한 놀라운 천착이었다"고 평했다.
인도계 미국인 수키 라임즈는 미국 시애틀의 한 쇼핑몰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현장에서 파키스탄 이민자 소년을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영웅이 된 수키는 50여 일 만에 의식을 되찾지만 모국어인 영어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낯선 한국어를 원어민처럼 내뱉기 시작한다.
전대미문의 증상에 의학·과학계는 첫 발병자의 이름을 따 이 병을 '수키 증후군'이라 부른다. 이 기묘한 증상은 급속히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고, 극한의 분쟁이나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에게서 발현된다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이후 밝혀진 이 병의 심각한 예후는 시간이 지나면 신체 부위가 조금씩 먼지로 변해 결국 몸 전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적으로 증상이 발현되는 심각한 질환이란 점에서 팬데믹을 선언한다.
언어 문제로 미국에서 생업을 할 수 없게 되자 한국으로 온 수키는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미국과 한국, 인도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지영 작가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수키병 환자들이 먼지로 사라지는 설정에 대해 "언어가 개인의 정체성, 실존의 문제와 직결됐다고 본다"며 "수키 증후군 환자들이 먼지로 사라지는 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외면이 빚은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언어적 정체성이 바뀐 존재가 되면 본질이 사라지고 허상이 남는 것인지 물음을 던진다. 영어를 말하던 과거의 존재가 전체 인생에서 진짜 본질이 맞는지 실존적 화두에 천착한다. 또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단절된 삶을 사는 이 시대와도 닿아있어 공감을 안긴다.
특히 작품 전체를 수키 증후군과 관련된 인터뷰와 기사만으로 채운 점도 신선하다. 과감한 생략과 단단한 문장을 통해 시의 행이나 연처럼 압축된 필체로 전개한 방식이 실험적이다.
지영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과 문학을 공부했다. 2017년 단편 '그리고 신발을 위한 냉장고'로 '5.18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태국 나레수안대학교 동양어문학부에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다. 260쪽.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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