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 그려
"예술 하는 노동자 보여주며 고정관념 탈피…스스로 치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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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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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속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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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속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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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재춘언니' 속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노동운동 혐오 시선 여전…'내 아버지' 모습이라 느꼈으면"
다큐 '재춘언니' 이수정 감독…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 그려
"예술 하는 노동자 보여주며 고정관념 탈피…스스로 치유도"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4464일. 해가 열두 번 바뀌고 계절이 마흔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길 위에 있었다. 법원에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재춘언니'에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이런 투쟁과 연대의 시간이 기록돼 있다. 이수정 감독은 대전 공장에서 기타 기능공으로 일했던 임재춘씨 등 해고노동자들의 길 위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을 받는 등 평단의 박수를 끌어냈다.
이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012년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복직 투쟁이 이어질 줄 몰랐다"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록 작업을 조급해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콜트·콜텍은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유명한 기타 브랜드였지만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 투쟁에 들어간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노사 합의가 이뤄진 2019년 4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영화는 노동자들의 격한 투쟁 장면보다는 이들이 밴드·연극·시·그림 등 예술 활동을 하면서 사측과 해고 제도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투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가열하게 투쟁하는 모습만 담아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롭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자고 마음먹었죠. 이들의 투쟁이 특이했던 게 문화·예술과 노동운동이 만났다는 점이어서 그걸 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기타를 만들던 사람들의 복직 투쟁이어선지 많은 예술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뮤지션들은 '밴드를 만들자'고 했고, 배우들은 '연극을 해보자'고 했다.
이 감독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고립되는 걸 매우 두려워했다"며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투쟁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스스로 치유하는 경험 또한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법의 사각지대를 풍자한 연극과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노래 등을 만들기도 했다.
작품 이름이 '재춘언니'인 이유도 임재춘 씨가 동지들과 선보인 연극에서 여자 캐릭터인 오필리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농성장에서 요리를 담당하며 먹을 것을 챙겨주는 그를 사람들은 어느새 '언니'라 불렀다고 한다.
영화에는 임씨가 솔직한 마음을 써 내려간 농성 일기도 자주 등장한다. 그를 딸들과 갈등하고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 감독은 "해고노동자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내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관객들이 느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을 빨갱이라고 생각했잖아요. 지금은 노동운동을 했다고 해서 대공분실에 끌려가지는 않지만, 노조와 노동자 그리고 노동운동을 혐오하는 시선만큼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는 앞서 희망버스와 그곳에 탄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2012)를 통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5년에는 세월호 이후 1년여간 유족들의 삶을 기록한 '나쁜 나라'(2015)를 선보이는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였다.
이 감독은 "자기 몫이 없고 결함이 있는 존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는 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자본이 신이 된 사회입니다. 하지만 전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논의하는 것이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각자를 돌아보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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