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깨달은 우리의 멋…숯과 한지로 쌓은 무채색 풍경

Contribution / 강종훈 / 2021-11-20 07: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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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리안갤러리 서울 개인전
▲ 이진우 개인전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 여는 이진우 작가

파리서 깨달은 우리의 멋…숯과 한지로 쌓은 무채색 풍경

이진우 리안갤러리 서울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지는 우리 조상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정말 대단한 재료로, 내가 그 덕을 보고 있어요."

재불 작가 이진우(62)는 한국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1983년 프랑스로 건너가 지금까지 활동해왔다.

1989년까지 파리 8대학과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당시 프랑스를 휩쓴 아방가르드 전위예술 등에 깊이 빠지기도 했다.

여러 장르를 접한 끝에 그가 선택한 재료는 한지와 숯이었다. 서양에서 그들의 미술을 배웠고 그들과 그곳에서 생활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쓰는 셈이다.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18일 개막한 이진우 개인전은 한지와 숯을 활용한 특유의 작품 23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아크릴 용액을 바른 천 위에 무작위로 숯이나 목탄을 뿌린다. 그 위에 한지를 덮고 철제 솔로 문지르고 긁어내면 한지와 숯, 목탄이 뒤섞여 응어리진다.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온종일 작업한 결과물 위에 다시 한지를 덮어 밭을 갈아엎는 듯한 과정을 한 작품에 많으면 20~30번까지 반복한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한지와 숯을 활용한 이진우는 "한지를 덮는 것은 그 전 작업을 '무효화'하는 행위여서, 상실감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30년간 깎아내고 없애는 일을 계속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작업의 중요한 화두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더 지울 것이 없을 때까지 자신을 지우는 것이 가능한가를 실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숯과 한지가 섞여 완성된 작품에는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을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희뿌연 안개가 낀 듯한 여명부터 칠흑 같은 어둠까지 무채색이 퍼지는 화면에 여러 겹 쌓인 재료들이 묵직하고 입체적인 지층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타지에 가서야 자신이 그동안 멋모르고 막연히 서양 미술을 해왔음을 깨닫고, 한국의 미를 찾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한지와 숯을 쓰게 됐다.

그는 "겸재나 추사 같은 훌륭한 선배가 있는데 그 미감을 유럽에 나가고서야 알게 됐다"며 "우리 민중에게 우리의 멋을 보여주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 학교에서 왜 한국 작가인데 유럽 느낌이 나느냐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한국인이라면 김치와 된장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한지와 먹을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프랑스에서 미술재료학을 전공하며 수많은 재료를 연구한 작가는 "문창호지 바른 방 안에서는 밖으로 누가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십장 발라도 빛을 흡수하고 투과하는 것이 한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는 단색화 대가 박서보를 잇는 한지 작가로도 꼽힌다. 박서보가 자신의 영국 개인전 때 관계자들에게 소개한 계기로 2017년 도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고 리안갤러리는 전했다. 박서보는 이번 개인전 첫날 갤러리를 방문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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