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서구 근대문물·기술 유입 통로
다양한 건축물 보존·복원해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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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개항장 전경 [촬영 임순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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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년 인천항 갑문 기초 콘크리트 시공 [인천축항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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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물포구락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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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자유공원 청일 조계지 계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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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시민애집 [촬영 신민재] |
[로컬의 재발견] 한국 최초의 국제도시…인천 개항장서 '시간여행'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서구 근대문물·기술 유입 통로
다양한 건축물 보존·복원해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인기
[※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인천=연합뉴스) 신민재 기자 = 대한민국 수도 서울과 가까운 인천국제공항은 2024년 국제선 여객 7천66만명이 이용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국제선 화물도 290만t으로 홍콩, 상하이에 이어 글로벌 톱3에 올랐다.
항공교통이 대중화한 지금이야 공항이 국제 교류의 관문이지만, 원거리 이동을 해운에 의존했던 한 세기 이전만 해도 세계를 이어주는 공간은 항구였다.
◇ 어촌 포구에서 한국 최초의 국제도시로
인천항은 1883년 외세에 의해 개항할 당시만 해도 자연조건을 그대로 활용한 '제물포'라는 어촌 포구였다.
일제는 서울과 가까운 항만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의 인천 내항 1부두 자리에 최고 10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와 관계없이 배를 댈 수 있는 인공 항만시설을 지었다.
1918년 완공된 국내 최초의 근대적 갑문식 항만시설인 인천항 제1선거는 4천500t급 선박 3척과 2천t급 선박 4척을 동시에 댈 수 있었다.
이곳은 인천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 선생(1876∼1949년)이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축항공사에 강제동원돼 노역을 한 일화도 전해진다.
항구를 통해 세계와 맞닿은 인천 개항장에는 당시의 생생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골목마다 수많은 인물과 사연이 빚어낸 근현대의 감성이 넘쳐난다.
◇ 개항기 외국인 사교클럽 '제물포구락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서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돌계단을 내려오면 유럽풍의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1901년 지은 제물포구락부다. 구락부는 '클럽'(Club)의 일본식 가차음이다.
이 건물은 러시아 출신 건축가 사바찐(Sabatin)이 1900년 설계해 이듬해 6월 완공됐다. 내부에는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식당 등을 갖췄고, 외부에는 테니스장을 설치해 사교모임에 적합하게 꾸몄다.
당시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 질서에 첫발을 내디딘 대한제국의 외교공간이었던 셈이다.
인천 개항장에는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렸던 조계지가 있었고, 각계 고위층이 모여 살았다.
제물포구락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1914년 조계제도가 폐지되면서 외국인 사교클럽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일본부인회관(1934년), 주한미군 장교 클럽(1945년), 인천시립박물관(1953년), 인천문화원(1990년)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120여년이 흐르는 동안 건물 내부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외관은 그대로다. 인천시는 2007년 시민에 개방한 뒤 2020년 리모델링을 마쳤다.
◇ 역사문화 산책공간으로 단장…수도권 명소로 부상
제물포구락부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인천시민애집'은 옛 시장관사다.
이 관사 터에는 1901∼1916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인 사업가의 2층짜리 별장이 있었다. 이 건물은 해방 후 서구식 레스토랑과 사교클럽 등의 용도로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자리에 새로 지어진 한옥 시장관사에는 2001년까지 모두 17명의 인천시장이 거주했다. 이후 2020년까지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운영되다가 2021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인천시민애집 옆 '이음1977'은 한국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근(1931∼1986년)이 설계해 1977년 준공된 주택이다. 김수근은 한국 현대 건축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음1977은 인천도시공사(iH)가 2020년 민간 소유주로부터 사들인 뒤 '근대 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을 추진해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인천시는 차이나타운과 인접한 중구 송학동 일대를 역사산책공간으로 조성해 시민과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개항장에 있는 소금창고도 시민에 개방할 예정이다.
이 소금창고는 1939년 지어진 건물로, 일본의 도시문화주택 형태인 적산가옥과 부속 건물인 소금창고가 남아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28일 "인천의 소중한 유산들이 시민을 위해 활용되고 그 가치가 미래 세대로 전승되도록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겠다"며 "인천 개항장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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