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물건이라고?"…스트리밍 시대에 뜨거워지는 'LP 감성'

K-POP / 김예나 / 2021-11-21 0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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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열풍 타고 시장 꾸준히 확대…지난해 판매량 94% 늘어
올해도 22% 증가…구입자 76%는 20∼40대
▲ 빼곡히 꽂힌 LP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중구 회현 지하상가의 한 LP 상점에 음반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2021.11.18 yes@yna.co.kr

▲ [연합뉴스 자료사진]

▲ LP음악 [촬영 안철수]

"추억 속 물건이라고?"…스트리밍 시대에 뜨거워지는 'LP 감성'

레트로 열풍 타고 시장 꾸준히 확대…지난해 판매량 94% 늘어

올해도 22% 증가…구입자 76%는 20∼40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이건 들어본 적 있어?", "판 상태가 괜찮은데 한번 들어볼까?"

지난 18일 늦은 오후 서울 중구 회현 지하상가. 한눈에 봐도 족히 수천 장은 넘어 보이는 LP판들 너머로 2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이 고민에 빠졌다.

A부터 Z까지 알파벳 철자에 따라 구분돼 있는 선반을 따라 LP판을 들었다 놓기를 여러 번.

젊은 손님을 바라보던 가게 주인이 인심 좋게 가격을 깎아주자 이들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와 득템했다!"

한때 추억 속 물건쯤으로 여겨졌던 LP나 카세트테이프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관리하기 쉽지 않고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LP가 요즘 20∼30대는 물론, 10대들 사이에도 매력적인 아이템이 됐다.

일부 수집가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LP가 클릭 몇 번으로 음악을 듣는 '스트리밍' 시대에도 유행을 주도하는 한 축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21일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예스24 홈페이지 등을 통해 판매된 LP 양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1.9% 증가했다.

구체적인 판매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추이를 보면 LP 시장이 꾸준히 커지는 양상이다.

연도별 판매량 증가율을 따지면 2019년에는 24.0%를 기록했고, 2020년에는 94.1%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 LP를 산 구매자들의 연령을 보면 30대가 36%를 차지했고 40대 21%, 20대 1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장르별로는 특히 가요 LP 판매 증가가 두드러졌다.

올해 10월까지 집계된 수치를 보면 가요 LP는 지난해보다 84.3% 더 판매됐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개 LP 가운데 9개는 가요 LP였고, 나머지 1개는 드라마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었다.

드라마 OST 대부분이 가요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판매량 '톱 10' 모두 가요인 셈이다.

팝과 클래식 분야 LP 판매량은 전년 대비 각각 4.2%, 3.1% 감소했지만, 연말까지는 더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예스24 관계자는 "가요 판매량이 작년에 이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LP 전체 판매량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며 "12월까지 판매량을 고려하면 팝과 클래식도 작년보다 소폭 증가하는 결과로 마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요계에서는 LP 음반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지난달까지 예스24에서 가장 많이 팔린 LP는 태연의 미니 4집 '왓 두 아이 콜 유'(What Do I Call You)였고, 가수 백예린이 주축이 된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정규 1집은 LP 선 주문량만 1만장을 넘어서더니 상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듯 가수들도 LP를 발매하는 데 적극적이다.

가수 성시경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정규앨범 8집 'ㅅ'(시옷)과 관련해 "LP를 사고 싶다고 하는 분이 많다고 해서 (LP로도) 만들었다"고 밝혔다. LP는 5천장 한정 수량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밴드 시나위 리더인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페이스북에서 "시나위 6·7집 LP가 11월 26일부터 판매될 예정이었으나 예약 판매로 모두 완판(모두 판매)됐다"며 "더 찍어야겠다"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가요계의 한 관계자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가 주도하는 레트로(복고) 열풍 속에 LP 인기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공장에 예약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LP 제작 공장을 운영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는 내년 상반기까지 스케줄이 가득 차 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관계자는 "2020년 기준으로만 봐도 LP 생산량이 전년 대비 250% 증가했다"며 "지금 LP 제작을 문의하는 업체에는 내년 6월 정도에 납품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까지 예약된 건을 보면 대부분이 가요 또는 인디밴드 음악"이라며 "보통은 CD를 발매하면서 디지털 음원을 내놓는데, 최근에는 앨범 준비 과정부터 LP 발매를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LP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시장이 점차 넓어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중음악평론가이자 LP 수집가인 최규성 씨는 "최근 들어서는 LP 유통 또한 '정보전'"이라며 "오랜 기간 LP를 수집해 온 '헤비 컬렉터'들은 새로 음반이 나오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뮤지션의 경우, 한정 수량의 LP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지한 뒤 판매하는데 그야말로 '순삭'(순간삭제의 준말·매우 빠르게 사라진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발품을 팔아가며 판 한장 한장 모아온 수집가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최 평론가는 "LP를 듣고 싶은 사람은 많아졌는데 생산량은 한정적"이라며 "유명 가수들도 한 번에 물량을 배포하지 못하고 나눠서 배분할 정도인데 그 과정에서 '프리미엄'이 높아져 고질적인 리셀(재판매)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끝)

(C)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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