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 속 찾아온 설 '노루즈'…조국의 봄 기다리는 이란인들

Heritage / 이의진 / 2026-03-15 06: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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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고 새로운 삶 시작"…재한이란인들 평화 기원
하메네이 사망에 40일 애도 기간…대사관 행사는 불투명
▲ 지난해 노루즈 연휴 기간 이란 테헤란의 시장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 재한이란인들, 미국대사관 앞 응원 집회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이란에 자유 온다." 8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 광장에 재한이란인 약 100명이 모였다. 이란 국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모인 이들은 이란을 공격 중인 미국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이란 독재 끝내자", "이란의 자유를 되찾자" 등 구호를 외친 이들은 이란의 반격으로 쿠웨이트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 6명의 사진에 LED 촛불이나 조화를 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인형 탈을 쓴 참가자에게 꽃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며 "이란 국민에 대한 전쟁이나 국경 침략이 아니라 (반정부 시위대) 수만 명을 학살한 정권을 막기 위해 필요한 인도적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전란 속 찾아온 설 '노루즈'…조국의 봄 기다리는 이란인들

"겨울 가고 새로운 삶 시작"…재한이란인들 평화 기원

하메네이 사망에 40일 애도 기간…대사관 행사는 불투명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이란의 새해는 매서운 겨울이 아닌 따뜻한 봄에 시작된다. 고대 페르시아 역법에 따라 매년 절기상 춘분(春分)이 새해 첫날이기 때문이다. 오는 21일이면 이란력으로 1405년 1월 1일이 된다.

우리의 설날처럼 신년을 맞는 이 명절을 '노루즈(Nowruz)'라 부른다. 통상 주어지는 2주의 긴 연휴 동안 가족·친지를 만나거나 여행을 떠나며 축제를 즐긴다. 이란인이라면 누구나 이 '봄의 설날'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품고 산다.

하지만 미국·이스라엘과의 전면전 국면인 올해 이란에선 축제의 즐거움 대신 무거운 긴장감이 감돈다. 폭격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데다, 군과 경찰의 순찰이 강화된 거리 등 공공장소에 인파가 모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노루즈를 맞이하는 것은 한국에 머무는 이란인들도 마찬가지다. 재한이란인네트워크는 노루즈 당일 주한이란대사관 앞 등에서 조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씨마 재한이란인네트워크 대표는 1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전엔 협회가 따로 없어 각자 명절을 보내곤 했지만, 올해는 색다른 노루즈가 될 것"이라며 "모든 어둠이 겨울에 다 얼어붙고, 봄엔 새싹이 올라온다. 노루즈의 진정한 의미는 새 삶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크에 동참하는 재한 이란인들은 '벨라야테 파키'(이슬람법학자에 의한 신정통치)의 종식과 진정한 봄이 오기를 기대하며 노루즈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노루즈는 본래 봄의 도래를 '빛의 신이 어둠의 신을 압도한 방증'으로 본 조로아스터교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인 유학생 예가네씨는 "추운 날이 끝나고 따뜻한 시기가 오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는 게 노루즈"라며 "추운 날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 따뜻한 날은 '팔레비'를 뜻한다"고 했다. 여기서 팔레비는 망명 중인 이란 옛 왕정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66)를 가리킨다.

예가네씨는 "전쟁은 좋지 않지만 지금 상황이 변화의 과정이라는 느낌도 받는다"며 "테헤란의 시민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간 한국에서는 주한이란대사관이 교민들을 초청해 노루즈 행사를 주관해왔다. 2015년에는 드라마 '대장금'의 현지 흥행으로 이란 내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이영애가 행사에 참석해 국빈급 대우를 받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대사관 주최 행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난 1일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공습으로 사망한 사실이 이란 정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되며, 이란 전역에 40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기 때문이다.

주한이란대사관 역시 최근 조문록을 운영하는 등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어, 구체적인 명절 행사 계획은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이란인의 저력'을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취지에서 예정대로 노루즈 행사를 여는 곳도 있다. 매년 노루즈를 맞아 자체 문화제를 개최해온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는 올해도 행사를 진행한다.

최근 하메네이 사망과 전쟁 격화 등 혼란스러운 정세를 고려해 학과 차원에서 취소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이란 출신 교수의 강한 의지로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다만 예년보다는 규모를 축소해 진행할 예정이다.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이란인들은 아무리 힘든 시기에도 함께 모여 봄이 온 것을 기념하며 생명과 재생, 우정과 연대의 가치를 되새긴다고 한다"고 했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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