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과 설악,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땅 '인제 DMZ' 가보니

Travel / 박영서 / 2022-09-17 13: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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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만에 민간에 개방…원시 생태계 속 분단 현실 그대로
1052고지서 동서남북 절경 한눈에…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
▲ 1052고지에서 바라본 맑은 날의 금강산 (인제=연합뉴스)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사진은 이달 초 인제 DMZ 평화의 길 1052고지에서 맑은 날씨 속에 촬영된 금강산(맨 뒤편) 모습. 2022.9.17 [설악금강서화마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onanys@yna.co.kr

▲ 짙은 안개에 가려진 금강산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 1052고지에서 바라본 금강산 일대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다. 2022.9.17 conanys@yna.co.kr

▲ 70년 만에 발길 허락한 인제 DMZ 평화의 길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을 찾은 탐방객들이 짙은 안개가 낀 탐방로를 걷고 있다. 2022.9.17 conanys@yna.co.kr

▲ DMZ 평화의 길에서 바라본 향로봉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 탐방로에서 바라본 향로봉 일대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다. 2022.9.17 conanys@yna.co.kr

▲ 짙은 안개에 가려진 금강산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 1052고지에서 바라본 금강산 일대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다. 2022.9.17 conanys@yna.co.kr

▲ 평화의 길에 뿌리 내린 야생화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 탐방로에 핀 야생화 각시취가 눈길을 끈다. 2022.9.17 conanys@yna.co.kr

▲ DMZ 야생화에 앉은 나비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70여 년 만에 정식으로 민간에 개방됐다. 지난 16일 오후 인제 DMZ 평화의 길 탐방로에 핀 야생화 개미취에 나비가 앉아 날갯짓을 하고 있다. 2022.9.17 conanys@yna.co.kr

금강과 설악,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땅 '인제 DMZ' 가보니

70여 년 만에 민간에 개방…원시 생태계 속 분단 현실 그대로

1052고지서 동서남북 절경 한눈에…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저곳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70여 년 만에 민간인의 발길을 허락한 강원 인제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종점인 1052고지에 오르면 금강산과 함께 마치 수평선처럼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알 수 없는 끝없는 푸름을 품은 절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풍경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있고, 평화와 희망이 있다.

솔솔 부는 바람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자고 속삭이는 듯하고, 야생화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자유로운 날갯짓도 무언가를 말하는 목소리처럼 귓가에 남는다.

인제 DMZ 평화의 길은 세월의 풍랑에도 지난 70여 년간 인간의 삶이 흐르지 않은 곳이자, 풍요롭고 아름답지만 슬픔에 묶여 시간의 흐름이 걸음을 멈춘 듯한 고요함마저 느껴지는 곳이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물지 않은 동족상잔의 뼈아픈 상처를 꼭꼭 숨긴 채 살아온 땅이다.

'평화의 길'이라는 새 이름표를 단 인제 DMZ 테마노선 탐방의 시작점은 인제군 서화면 대곡리초소다.

상서로울 서(瑞)와 화할 화(和)로 이뤄진 서화라는 지명에는 서로 뜻이 맞아 사이좋은 상태가 되라는 의미처럼 남북이 뜻이 맞아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남북전쟁 전까지만 해도 38도선 이북에 있었던 서화마을 주민 중에는 금강산에서 놀다 온 사람도 꽤 많았다.

금강산으로 소풍을 다녀올 정도로 DMZ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지만,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마저 생기고 나서는 천연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산이 됐다.

대곡(大谷)리라는 마을 역시 그 이름처럼 70리(27.5㎞)나 되는 긴 산골짜기가 있다.

전통적으로 금강산 영역에 속하는 범위가 양구와 인제 일대, 설악산 신선대까지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곳은 인제에서 금강산으로 이동하는 통로였다.

대곡리 초소를 지나 민통선 안으로 진입했다면 사실상 '금강산에 들어온 것'이라고 봐도 좋은 이유다.

시작점인 인제군 서화면 대곡리초소에서 종점인 1052고지까지 거리는 왕복 46㎞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 데만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대부분 차량 이동 구간이지만, 직접 걸어볼 수 있는 1.5㎞가량의 하늘길 도보탐방 구간도 있다.

군 당국에서 포장한 전술도로를 이용하기에 승차감은 나쁘지 않다.

사실상 모든 구간을 차로 이동이 가능하기에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은 인제 DMZ 테마노선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내내 좌우로 펼쳐지는 험준한 산악 지형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라는 사색할 여유를 주고, 군인들이 휴가를 나오면 다리를 건널 때쯤 배가 고파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배고픈 다리'는 웃음을 짓게 한다.

포토존으로 쓰이는 을지삼거리에 오르면 향로봉과 건봉산 등 금강산 남쪽 구간을 만난다.

향로봉 정상을 비롯한 능선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주요 고지에 군사시설이 세워진 모습에서 남북분단의 현실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향로봉 우측으로 흐르는 동해안 최대의 연어 회귀천이자, 유일하게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물줄기인 남강(南江)에서는 매년 봄이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연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다만 '봉우리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향을 피우는 것 같다'고 붙은 이름처럼 안개가 변덕이 심하다.

공교롭게도 연합뉴스가 찾은 지난 16일은 향로봉이 이름값을 제대로 한 날이었지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됐다.

을지삼거리에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올라가면 만나는 꼭대기가 바로 '1052고지'다.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전망에 발아래로 펼쳐진 DMZ, 양구 해안면 펀치볼, 소양강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무산, 무산 앞뒤로 위치한 미수복지역인 이포리와 가전리, 금강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인제에서 내금강으로 가는 최단 거리가 60㎞, 고성에서 외금강까지의 거리가 100㎞라고 하니 금강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 속리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주요 능선이자, 남과 북으로 금강산과 설악산의 정기를 오롯이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1052고지다.

1052고지에서는 능선을 따라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다.

전쟁의 치열함이 진하게 배어 있다고 생각하면 아픔이 느껴지고, 남북분단의 상징에서 한반도의 귀중한 자연유산으로 탈바꿈했다고 생각하면 소중하다.

철책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이지만, 1052고지에 세워진 '854고지 전적비'를 보면 이곳 일대가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지 가늠케 한다.

점령과 탈환을 반복한 끝에 탈환한 854고지는 DMZ 내에 있어 전적비를 세울 수가 없어 1052고지에 세워졌다.

854고지 전투는 지금의 을지부대(육군 제12보병사단)를 있게 한 기념비적인 전투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승전보를 전해온 12사단에 '을지부대'라는 명칭을 지어줬다.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이 수나라 113만 대군을 물리친 기백을 계승하라는 의미였다.

1052고지 주변에 뿌리를 내린 야생화를 눈에 담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각시취, 개미취, 용담초 등 야생화는 나비와 벌과 함께 어울려 논다. 붉은 단풍이 일품인 붉나무부터 신갈나무, 피나무, 고로쇠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을은 더 예쁘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공간에서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평화와 생명의 땅을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인제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 탐방은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하루 2회, 오전 10시와 오후 2시로 나누어 진행된다.

탐방 신청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한국관광공사 평화의 길 누리집(www.dmzwalk.com)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탐방은 설악금강서화마을(☎ 033-463-7077)로 문의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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