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관습 따르지 않아 낯설 수 있어…인물에 중점 두고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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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덕 감독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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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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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덕 감독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글리치' 노덕 감독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찾아가는 이야기"
"장르적 관습 따르지 않아 낯설 수 있어…인물에 중점 두고 연출"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영화 '연애의 온도'(2013), '특종: 량첸살인기'(2015)에서 감각적인 연출로 경계선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들춰낸 노덕 감독이 이번에는 SF 미스터리 추적 드라마로 돌아왔다.
노 감독이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글리치'는 외계인을 추적하는 두 여성 캐릭터의 엉뚱한 모험 속에서 믿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노 감독은 "드라마에서는 믿음이라는 게 다양한 의미로 묘사된다"며 "그 믿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글리치'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듯 보이는 남자친구 시국(이동휘 분)을 찾는 지효(전여빈)와 외계인을 쫓는 보라의 어렸을 적 친구 보라(나나)의 모험을 그린다. 지효는 시국을 찾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네가 정말 찾는 게 시국이야?"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지효는 외계인이 보이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외계인이 안 보이는 척 살아왔다. 자신도 눈앞의 외계인이 허상인지 진짜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지효가 시국을 찾기 위해 경찰서에서 외계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이비 종교 시설에 잠입한다. 회사도 나가지 않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지효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 감독은 "지효가 찾고 있던 게 시국이었다면 드라마는 시국이 돌아온 8부에서 끝났을 것"이라며 "지효가 궁극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을 계속 의심하는 지효에게 (외계인의 실존 여부는) 꼭 풀어야 하는 숙제"라며 "그걸 풀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장하고, 강인하게 (외계인이 자신의 머리에 심었다는) 칩을 찾으러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효가 믿음을 찾아가는 이 여정에 외계인, 납치, 사이비 종교 등 다소 황당한 이야기들이 끼어들다 보니 작품의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노 감독은 이에 대해 "'글리치'는 장르적 관습을 따라가는 작품이 아니다"라며 "예상을 깨는 부분이 '의외성', '흥미'로 다가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장르적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이 작품은 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극 중 벌어지는 사건보다도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작품을 본다면 좀 더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글리치'는 연출적인 면에서 외계인, 사이비 종교 등이 소재로 등장하는 데도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장르물들이 지향하는 두렵고 긴장된 분위기로 장르물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연출은 피했다.
사이비 종교의 정체가 처음 드러나는 장면은 알록달록한 미러볼 조명으로 다소 황당하게까지 비쳤고, 사이비 종교 신도들의 집단 기도 역시 3D 안경을 쓰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유쾌하게 그려졌다.
노 감독은 "장르가 추구하는 긴장감, 호쾌함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 안에서 인물이 움직이기보다는 인물의 움직임에 이런 장르들이 왔다 갔다 하길 원했다"며 "각 장르를 저변에 깔아놓고 인물을 보여주는 데 중심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래 장르라는 것은 그걸 추구해서 어떤 도달점에 이르는 순간이 있다"며 "SF니까 SF의 극단, 미스터리니까 미스터리의 극단을 보여줘야 하는데 '글리치'는 오히려 이런 부분을 경계했다"고 말했다.
노 감독은 '글리치'를 작업하기 5∼6년 전에 비슷한 분위기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가 2시간 분량의 영화로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한계를 느껴 포기했다고 했다. 연쇄 실종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로, 알고 보니 지구에 살던 외계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는 "외계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미지의 존재지만, 그렇다고 망상 속 존재도 아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하기도 한다"며 "이런 명확과 불명확함의 경계에 있는 소재여서 (콘텐츠의) 여러 설정에 쓰이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글리치'는 전여빈과 나나의 명콤비 활약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노 감독은 두 사람이 각각 분한 지효와 보라의 관계는 처음에는 단순하게 친구 관계로 시작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는 하나의 존재에서 파생된 객체일 수도 있다는 접근까지도 고려했다고 했다.
그는 "보라는 지효에게 '나를 믿어주는 존재'라는 판타지가 가미된 존재"라며 "지효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기억해주고, 혼란스러운 지효를 대신해 지효를 믿어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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