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난민…고통과 혼란의 삶 작품에 녹여낸 구르나

탄자니아 출신 영국 이주민…정체성 혼란 속 자아 찾는 이들 그려
"내 소설은 자전적 경험 아닌 시대의 이야기"

강종훈

| 2021-10-07 23: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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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 [로이터=연합뉴스]

식민주의·난민…고통과 혼란의 삶 작품에 녹여낸 구르나

탄자니아 출신 영국 이주민…정체성 혼란 속 자아 찾는 이들 그려

"내 소설은 자전적 경험 아닌 시대의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박상현 기자 = 스웨덴 한림원이 또 한 번 세간의 예상을 벗어난 선택을 했다.

오스트리아 극작가이자 소설가 페터 한트케,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쿠츠,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등 최근 서구권 작가가 연이어 수상하면서 올해에는 비서구권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그러나 아프리카 작가 중에서도 유력 후보로 꼽히던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시응오 등과 달리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73)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던 작가다. 구르나는 번역 출간된 책이 한 권도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구르나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출신 작가와는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다.

1948년 아프리카 대륙 동해안, 인도양 서부에 있는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68년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영어로 작품을 쓰며 작가로 활동했고, 켄트대 교수를 지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특수한 지역으로 꼽힌다. 지금은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됐지만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10세기에 이슬람교가 유입됐고 16세기와 17세기에는 포르투갈인과 아랍인이 진출해 아프리카 노예무역 기지가 됐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영국으로 건너간 작가의 작품에는 자연스럽게 식민주의와 난민, 이주와 관련된 정체성의 문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사단법인 아프리카문화연구소장인 이석호 카이스트 연구교수는 "유럽과 탄자니아에서 이중적 억압을 당한 인도양 잔지바르 섬 출신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프리카 본토 작가가 직접적인 저항을 보여준다면, 구르나는 굴절되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저항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르나의 수상을 예상한 이는 국내외에 거의 없을 것"이라며 "몇 년 동안 강력하게 후보로 거론되던 아프리카 본토 작가들이 아닌 구르나에게 상을 준 것에는 이러한 배경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르나의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정체성을 새로 정립해간다. 정체성의 혼란, 그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하다.

다만 작가는 "내 소설은 단순히 자전적인 경험을 담은 것이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데뷔작인 '떠남의 기억'(Memory of Departure)(1987)은 아프리카의 작은 해안마을을 떠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 번째 작품 '순례자의 길'(Pilgrim's Way)(1988)은 영국의 인종차별주의적 풍토 등 망명 생활의 다면적인 현실을 묘사했다.

대표작은 1994년 출간한 '낙원'(Paradise)으로, 부커상과 휘트브레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동아프리카의 식민지화를 묘사했다.

이 밖의 작품으로는 '바닷가에서'(By the Sea)(2001), '탈주'(Desertion)(2005), '마지막 선물'(The Last Gift)(2011), '사후'(Afterlives)(2020) 등이 있다.

왕은철 전북대 교수는 "구르나가 아프리카 작가 중 흑인이 아니라 이슬람계라는 사실도 중요하다"며 "아랍계는 탄자니아에서도 차별을 받고, 영국에서도 아웃사이더로 디아스포라적 삶을 산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문화적 혼종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품 속에 투영돼 있다"며 "이슬람과 유럽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영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계 아프리카인이라는 작가의 작품이 귀담아들어 볼 만한 소수자의 목소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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