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성
| 2023-06-26 20:17:02
뮤지컬 '그날들' 10년 출연 유준상 "20대의 나 볼 수 있어 행복"
매일 연기·노래 훈련…"여든 넘어서 '노인과 바다'로 은퇴하고 싶어"
'그날들' 10주년 기념 공연 다음 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서 개막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10년 동안 출연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니까 극의 모든 장면이 공감되기 시작했어요."
뮤지컬 '그날들'에 10년째 출연하고 있는 배우 유준상(54)은 시즌이 거듭될수록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해하게 됐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미련도 경험한 나이가 됐다"며 "10년 동안 출연해보니 대사 한 마디에도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날들'은 2013년 초연됐다. 이 작품은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20년 전 발생한 대통령 딸 실종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등 고(故) 김광석의 명곡을 사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다음 달 12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가 마련된다.
유준상은 그동안 김광석의 노래를 수없이 불러왔지만, 공연 때마다 애착이 가는 곡이 달라진다고 한다.
"공연에 들어가면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울컥 눈물이 납니다. 40대 중반에 공연할 때는 '서른 즈음에'를 노래하며 펑펑 울었어요. 50대에 접어들었을 때는 '거리에서'를 부르며 오열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준상은 "김광석의 노래는 가사에 힘이 있다"며 "'거리에서'를 연습할 때 실제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산책로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있다. 그때 마음속에 다가오는 가사의 힘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작품 전개를 따라 유준상은 경호부장 차정학의 20대와 40대 모습을 번갈아 연기한다.
그는 "20대의 나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다"며 "지나간 20대를 무대에서 연기할 수 있고, 관객들은 내 20대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더 스스로를 관리하고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시간을 넘나드는 연기가 주는 긴장감을 소개했다.
유준상의 목표는 앞으로 '그날들'에 10년 더 출연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력을 기르고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배우라면 아침마다 일어나서 기본적인 것들을 훈련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노래, 연기를 포함해 어떤 훈련이든 한 시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실력이 늘고 좋은 소리가 나오면서 발전하게 돼요."
유준상은 공연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보는 방식으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 '그날들'의 노래를 부르며 '1일 1리허설'을 한다.
그는 "김광석의 노래 가사를 많은 분이 알고 있어서 애드리브로 지어낼 수가 없기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며 "다른 작품에서는 실수할 때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실수를 안 한다"고 말했다.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유준상은 팬들에게 받은 진심을 돌려주기 위해 무대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다. 그는 팬들에게 "언제나 아낌없이 사랑해주시고 모자랄 때는 용기를 주시는 분들"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 무대도 화려해지고 크게 발전했다"며 "그렇지만 정서적으로 관객을 못 채워주면 볼거리가 아무리 화려해도 팬들이 뮤지컬을 보러 오지 않는다. 배우들이 에너지를 많이 쏟아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유준상 곁에는 힘이 되어주는 친구와 귀감이 되는 인물이 있다.
그는 "(저와) 함께 '뮤지컬 1.5세대'로 불리는 최정원 배우와 둘도 없는 친구인데 만날 때마다 '조금만 더 잘 버티자'고 서로 격려한다"며 "뮤지컬에 대한 애착이 크다. 절실했던 예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준상은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2016)'를 계기로 인연을 맺은 수묵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 선생에게서도 '롱런'의 비결을 배웠다. 세계적으로 러브콜을 받는 화가이면서도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글씨를 연습하는 대가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여전히 새로운 배역에 끌린다는 유준상은 80세를 넘길 무렵까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힘이 남는 한 뮤지컬에 도전하다 여든 살이 넘으면 '노인과 바다'로 뮤지컬에서 은퇴하고 싶어요. 마음가짐을 잘 유지해서 10년 뒤에 같은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여전히 매일 연습하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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