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희
| 2021-11-10 20:17:59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 담은 다큐멘터리 '로그북'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우리들의 이야기…삶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지하철 건너편 누군가의 가방에 매달린 노란 리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누군가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며 결국 등을 돌린다.
검은 바닷속에서 유리를 깨고 선체 안으로 들어가 처음 아이들을 마주한 순간을 떠올릴 때는 그 누구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작은 방에 수십 명이 모여 끌어안고 있던 아이들, 구명조끼 끈으로 연결된 아이들, 손을 맞잡고 있던 아이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고 올라왔던 민간 잠수사들은 물속에서 본 아이들의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 '로그북'은 세월호 사건 당시 두 달 이상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다. 당시의 생생한 기록이 담긴 작업 일지 '로그북'이 바탕이 됐다.
복진오 감독은 당시 언론 출입이 완전히 통제된 바지선의 유일한 기록자였다.
목숨을 걸고 일하면서도 주변의 오해와 잘못된 언론 보도로 고립돼 있던 잠수사들을 설득해 현장에 함께 했던 복 감독의 카메라에는 뉴스를 보고 읽으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검고 깊고 거친 바다와 그 속에서 아이들을 찾아 헤맸던 잠수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한 수년이 지나도록 수면제와 술에 의존해 간신히 잠을 청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서 투석하고, 정신과 의사 앞에서 '매일매일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인데, 살고 싶다'고 오열하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담겼다.
복 감독은 10일 오후 시사회에 이어 열린 간담회에서 "당시 민간 잠수사들이 오해받는 걸 보고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라도 현장에서 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대로 취재해 나중에 공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촬영 첫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검은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에 가슴이 울렸고, 그게 지금까지 나를 붙잡아 뒀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배상웅 잠수사는 "다들 말을 잘 못 하고 대화가 없어서 당시에 감정을 공유하지 못했다. 나만 슬픈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면서야 다들 나처럼 힘들고 슬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3개월, 6개월씩 배를 타느라 가족들과 보낼 시간이 없었는데, 세월호를 겪고 나서 친구와 지인,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 잠수 일도 그만하게 됐다"며 "슬픈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악몽과 환영에 시달리며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했던 한재명 잠수사는 "생존 수영 강사 자격증을 따고 강습을 준비하고 있다"며 "어린이들이 해상 사고가 나면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의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고도 한 번의 수술을 더 앞둔 강유성 잠수사는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고립될 뻔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당시의 일과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공유하면서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며 "앞으로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김상우 잠수사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뭉클하다"며 "잊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어서 생각날 때마다 생각하고 화나면 화내고 웃을 일이 있으면 웃으며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복 감독은 "잠수사들이 했던 일들이 자세히 담겼고 접하는 관객들도 가슴 아프고 힘겨울 수 있지만, 헌신적으로 일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을 봐주시는 게 잠수사들과 여러분이 함께 치유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전체관람가.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