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6-11 19:36:55
고단함을 털어내자 펼쳐진 도원…춤과 기술로 만들어낸 이상향
국립무용단 '몽유도원무' 2년 만에 재공연…'구비구비' 펼쳐낸 안무
전통 춤·미디어아트 결합해 만든 감각적 무대…12∼14일 국립극장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흑백으로 가득 찬 무대 위, 하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저마다의 무게를 담은 봇짐을 짊어진 채 무겁게 걸음을 내디딘다.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는 듯 묵직하게 이어지던 움직임은 2막으로 접어들며 반전을 맞이한다.
무대는 생명력을 품은 초록과 화사한 분홍빛 의상으로 물들고, 무용수들의 몸짓은 한결 가볍고 경쾌하다.
시각적 색채의 대비를 통해 현실의 고단한 여정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이상 세계, '도원'으로의 여정을 직관적으로 그려낸 순간이다.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 프레스콜에서는 한국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춤과 현대적인 미디어아트가 조화롭게 맞물리며 만들어낸 감각적인 무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삼아, 혼란과 고단함이 가득한 현실을 지나 이상향에 이르는 인간의 여정을 오늘날의 움직임으로 풀어낸다.
지난달 국립현대무용단 신임 단장 겸 예술감독에 임명된 차진엽이 안무와 연출을 맡아 2022년 초연과 2024년 재연을 거친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2년 만에 세 번째 무대로 돌아왔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구비구비'다.
한국의 산세와 물결을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무대 위 무용수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시각과 청각 요소 전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차진엽 단장은 "동시대성과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 그 몸들의 궤적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구비구비'라는 단어가 불현듯 찾아왔다"며 "이 키워드에서 시작된 시각적 언어와 음악의 파형, 높낮이가 중첩되면서 움직임의 크고 작음, 느리고 빠름이 형태화됐다"고 설명했다.
차 단장은 이번 세 번째 공연에서 단순히 과거의 안무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2년이 흐른 무용수들의 현재 상태와 삶의 서사를 투영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 작품을 발전시킨다기보다는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의 상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관찰했다"며 "무대 위 펼쳐지는 완성된 작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하는 과정은 마치 하루하루의 삶을 켜켜이 쌓아 그런 삶의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도 돋보인다.
이번 무대에는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Point cloud data·점군데이터)와 생성 알고리즘을 활용한 미디어아트가 도입돼 살아 움직이는 수묵의 에너지를 구현했다.
실제 산의 지형도를 3D로 형상화하고 이를 수십억 개의 디지털화된 점으로 환원해 무대 배경을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연출했다.
미디어아트를 담당한 황선정 작가는 "그림을 그려 디지털화했다기보다는 실제로 살아있는 어떤 물질에 가까운 자연의 상태를 구현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했다"며 "시간이 흘러 미래에 보아도 시대 정신을 보여주면서 가볍지 않은 하나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하며 기술을 다뤘다"고 작업 의도를 밝혔다.
초연과 재연에 모두 참여하며 작품과 긴 호흡을 맞춰온 무용수들은 이번 세 번째 무대를 준비하며 동작을 넘어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가 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무용단 조용진 단원은 "안무가님이 늘 말씀하셨던 '구비구비', '걷는 사람', '이끄는 사람'이라는 말들이 이미지로 깊게 남았다"며 "이상적인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무리를 이끄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춤을 추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지 단원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살아있다'는 것의 감각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며 "작품 안에서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도 생명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완성도를 높인 국립무용단의 '몽유도원무'는 오는 12∼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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