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사이에 둔 네 사람의 사랑…이창동 신작 '가능한 사랑'

집단해고와 가족의 삶, 이를 찍는 카메라까지 겹겹이 쌓인 이야기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 주연…'사랑은 가능할까' 질문 던져

정래원

| 2026-09-21 19:31:32

▲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거야."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분)는 해고 노동자 부부의 삶을 영화로 남기기 위해 그들 부부와 친분을 쌓으면서 이렇게 되뇐다.

재산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하는 부자 남편 상우(조인성)는 마치 계급이 다른 사람들이 진실로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너는 훌륭한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어. 너는 그 사람들하고 다르잖아."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같은 고통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대기업의 집단해고와 강제진압을 겪은 노동자, 그 후유증을 함께 이고 살아온 가족, 이들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람의 이야기가 여러 층위로 겹친다.

그 시작은 해고 당사자 호석(설경구 분)이다.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던 호석은 집단해고를 당한 뒤 동료들과 파업에 나섰다가 강제진압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 상해를 입었다.

호석은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다소 괴팍해 보이지만 아내와 아들에게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러나 그의 안에는 해고 이후 오랜 시간 쌓인 울분이 남아 있다. 분노와 억울함, 배신감, 죄책감, 열등감 등 어느 하나 품고 있기 까다로운 감정들로 똘똘 뭉친 사람처럼 보인다.

설경구는 무뚝뚝한 표정 속에 용암처럼 끓는 억하심정을 끌어안고 사는 호석을 생생하게 연기해냈다.

호석의 아내 미옥(전도연)은 남편이 해고되고 무너지는 동안 그의 곁을 지키며 가족의 삶을 꾸려왔다.

남편의 불안정함에 함께 휩쓸리기보다 자기 페이스대로 능청스럽게 받아내면서도 늘 호석의 편에 서는 것이 미옥이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술에 취하면 '사랑밖에 난 몰라'를 애창곡처럼 부르는 미옥은 남편을 향한 애정과 그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동시에 내비친다.

전도연은 이런 미옥을 희생적인 아내나 해고 노동자의 가족이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물로 만들었다. 미옥의 표정에는 사랑과 연민, 답답함과 욕망이 수시로 교차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는 해고 노동자들의 삶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이들 부부에게 다가간다.

예지는 파업 동료의 빈소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이나 호석이 억누른 울분을 터뜨리는 순간처럼 민감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삶을 영화에 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공존한다.

예지의 남편 상우는 한 번도 궁핍해 본 적이 없는 듯 구김살이 없고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다정하지만, 타인의 삶에 깊이 마음을 내주는 인물은 아니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두 사람을 단순히 해고 노동자 부부와 대비되는 '부자 부부'로 그리지 않는다.

생생한 고통 그 자체와 가질 수 없는 상대 등 두 사람은 풍족한 삶에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 탐을 낸다.

어느 한 가지 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물들이 얽히면서 영화 역시 단순한 선악이나 계급의 대립에서 벗어난다.

영화의 형식도 이 복잡한 인물들을 닮았다. 해고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직접 털어놓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에 가깝고, 그 사이로 시의 한 구절처럼 들리는 말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연출은 영화 속 예지가 찍는 영화와 이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게 한다.

미옥과 호석, 예지와 상우 부부의 계급적 차이를 주거 환경과 문화적 차이, 태도와 습관 같은 일상의 디테일로 포착하는 시선도 섬세하다.

사랑과 연민, 욕망과 탐닉의 경계가 흐릿한 네 사람의 관계는 제목처럼 '가능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제9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 국제 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돼 내년 오스카상에도 도전한다.

23일 개봉. 164분.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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