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바젤리츠의 아들 "아버지는 평생 '헛됨'을 그렸다"

다니엘 블라우 방한…"마지막 골드 페인팅은 아버지 작업의 정수"
"논란보다 창작 어려움에 힘들어해"…로팍 "전후 독일 미술의 길 제시"

박의래

| 2026-08-29 19:15:37

▲ 게오르그 바젤리츠 아들 다니엘 블라우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 아들 다니엘 블라우가 29일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바젤리츠 개인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8.29 laecorp@yna.co.kr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그보다 더'(오른쪽)와 '비가 많이 왔다' [세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고전 전시 전경 [세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게오르그 바젤리츠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다니엘 블라우와 타데우스 로팍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게오르그 바젤리츠 아들 다니엘 블라우(왼쪽)와 바젤리츠의 전속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창립자 타데우스 로팍이 29일 세화미술관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8.29 laecorp@yna.co.kr
▲ 게오르그 바젤리츠 작 '프랑스에서의 엘케 II' [세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아버지 예술에서 평생의 과제는 '바니타스'(Vanitas)였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그려왔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업한 '골드 페인팅' 연작이 바로 그 정수입니다."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의 아들 다니엘 블라우는 29일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예술을 관통한 핵심어로 '바니타스'를 꼽았다. 인간 삶의 유한함과 세속적 영광의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바니타스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와 맞닿아 있다.

블라우는 세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젤리츠 회고전을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회고전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초기작부터 말년의 골드 페인팅까지 회화·드로잉·조각 46점을 선보인다.

그는 이번 전시에 관해 "별다른 기대 없이 왔는데 의외로 훌륭해서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며 "특히 골드 페인팅 연작이 전시된 공간은 아버지를 위한 예배당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골드 페인팅 연작은 황금빛 화면 위에 늙고 쇠락한 바젤리츠와 그의 아내 엘케를 가는 선 몇 개로 새겨 넣은 작품이다. 신성함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금색과 쇠락하고 소멸하는 몸의 대비가 강렬하다.

바젤리츠는 초기에는 두꺼운 물감, 거친 붓질, 뒤틀린 신체로 격렬한 화면을 만들었다. 전쟁의 폐허와 분단된 독일의 기억, 역사와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은 군인, 독수리, 파편화된 신체 등의 형상으로 되풀이됐다.

그러나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회화는 감정적 제스처와 외형을 덜어내며 한층 간결해졌다.

블라우는 "젊은 시절 아버지는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을 안고 작업했고, 강렬한 표현은 그런 몸부림의 수단이었다"며 "수십 년에 걸쳐 점차 많은 것을 덜어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간결한 단선으로 표현해냈다"고 설명했다.

바젤리츠는 1969년부터 인물과 풍경을 위아래로 뒤집어 그렸다. 형상을 알아보는 데 익숙한 관람 방식을 흔들어 색채와 질감, 붓질, 화면의 구조 같은 회화 자체의 요소에 집중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아들에게 거꾸로 선 그림은 처음부터 파격으로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블라우는 다섯 살 무렵 농가의 작업실에 있던 아버지에게 커피 심부름을 하며 그림을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또 그림을 그렸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며 "그것이 거꾸로 그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저 좋은 그림으로만 보였다"고 말했다.

블라우는 바젤리츠의 뒤집기는 돌발적인 기교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논리의 전개였다고 봤다.

그는 "작품이 발전할수록 다른 대안은 점점 추상밖에 없게 된다"며 "미술사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아버지는 그 지점에서 다른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바젤리츠 역시 이번 전시를 앞두고 세화미술관과 생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거꾸로 그리기는 미술가로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바젤리츠의 작업은 초기부터 논쟁적이었다. 그는 1963년 첫 개인전에서 뒤틀린 신체와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외설 논란에 휩싸여 전시가 폐쇄되는 일을 겪었다. 전후 독일에서 금기시되던 '영웅'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우고, 독일의 상징인 독수리를 추락하는 듯 뒤집어 그리며 국가와 역사, 권위에 관한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그러나 블라우는 논란과 비난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던 모습으로 아버지를 기억했다. 예술가는 사회 바깥의 존재로, 모두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소수라도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겼다고 한다.

바젤리츠가 더 크게 겪은 고통은 외부 평가보다 창작 과정에서 왔다.

블라우는 "아버지는 어떤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옮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거나,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야 할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다른 작가들의 판화나 아프리카 미술을 수집하며 그 압박을 풀기도 했다"고 전했다.

바젤리츠의 전속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의 창립자 타데우스 로팍도 이번 방한 일정에 동행했다. 로팍은 바젤리츠를 단지 '거꾸로 그린 화가'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젤리츠는 전후 독일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폐허였던 시기에 작가로 출발했다"며 "당시에는 더 이상 예술이 탄생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마저 있었지만, 그는 독일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작가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바젤리츠가 1960년대 선보인 '영웅' 연작에 주목했다. 전후 독일에서 '영웅'이라는 말 자체가 무겁고 논쟁적인 상황이었지만, 바젤리츠는 누더기를 걸친 패잔병과 병든 인간의 모습을 영웅으로 내세웠다. 영웅주의를 찬양하는 대신 그 개념을 뒤집고, 폐허 속 인간의 취약한 실체를 드러냈다.

로팍은 "그는 거꾸로 그리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작업을 했다"며 "전후 독일의 물리적·정신적 폐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작품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바젤리츠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아내 엘케다. 바젤리츠는 초기작부터 마지막 연작까지 평생 엘케를 그렸다.

블라우는 "아버지는 어머니를 평생 사랑했고, 언제나 곁에 있었다"며 "많은 화가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반복해서 그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블라우는 "정작 어머니는 자신을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모습보다 아름답지 않게 그려서였느냐는 질문에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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