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8-13 19:00:32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우리가 멈추면, 역사에서 사라지니까."
'왜 계속 달려야 하느냐'는 물음에 되돌아오는 답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면서도 묵직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남겨져 추위에 떨면서도 연극 소품을 품에 꼭 껴안은 청년들의 눈빛에서는 어떤 시련에도 꺾이지 않을 뜨거운 열정과 예술을 향한 집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울문화재단이 광복 81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창작 초연 연극 '극장은 달린다!'가 13일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열린 프리뷰 현장에서 공개됐다.
오세혁 작가와 변영진 연출가가 합작한 이 작품은 1930년대 강제이주의 참혹한 역사와 아픔 속에서도 94년간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 예술의 뿌리를 지켜낸 '고려극장'의 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
극은 1932년 러시아 연해주 신한촌에서 한 떠돌이 이야기꾼이 청년들에게 조국을 잃은 이들의 흔적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를 넘겨주며 시작된다.
민족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극단을 세운 청년들은 잊혀가는 '춘향전'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혹독한 전수에 돌입하지만, 1937년 느닷없이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중앙아시아행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가며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황량한 갈대밭에 내던져진 순간에도 이들의 무대는 멈추지 않았다.
트럭을 타고 거친 벌판을 달려 흩어진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올린 '춘향전'은 단순한 유흥을 넘어 이주정책으로 단절된 민족을 따뜻하게 잇는 매개체가 되어 소식과 마음을 전한다.
마침내 1942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새로운 극장을 세우고,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창작극 '홍범도'를 준비하는 단원들의 모습과 함께 극이 마무리된다.
시공간을 넘어 무대 위로 모인 인물들의 열연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당대의 묵직한 감정과 역사적 순간들을 오늘날의 무대 위로 생생하게 불러냈다.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극장은 달린다'는 제목처럼 의미 있는 역사를 위해 서울문화재단도 힘껏 달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프리뷰 공연엔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고려인 단체 등이 초청됐다. 14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서울 공연을 마친 뒤엔 키르기스스탄(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타슈켄트), 카자흐스탄(아스타나) 등 중앙아시아 3개국 순회공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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