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9-16 18:28:21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밝은 정치를 베풀다'는 뜻을 간직한 창덕궁 희정당은 전통과 근대 문물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궁궐 건물이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경복궁 강녕전을 헐어 그 부재로 재건했다.
위계가 높은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으나 건물 앞쪽에는 자동차에 타기 쉽도록 현관이 생겼고, 창호는 한지가 아니라 유리창으로 마감했다.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시기 역사를 품은 공간인 셈이다.
과거 왕이 집무를 보며 외국 사신 등 손님을 접대하기도 했던 희정당 곳곳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공예품 50여 점으로 채워진다.
다음 달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간 열리는 '궁중문화축전' 행사에서다.
희정당을 배경으로 한 공예 전시 '조선 공간 미학 : 백(白)의 질서'의 감독을 맡은 백종환 WGNB 대표는 "희정당 속 비워진 여백에 주목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공간디자이너인 백 대표는 최근 문화계가 주목하는 인사 중 한 명이다.
백제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국보 '백제 금동대향로'를 전시하는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대향로관, 대구간송미술관의 '미인도실'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유물 한 점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꾸민 전용 공간들은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봄 궁중문화축전에서 열린 '고궁만정' 전시에서 작가로 참여했던 그는 올해 축전에서는 대표 행사 중 하나인 희정당 전시를 이끌게 됐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를 포함해 전승자 24명과 현대 작가 8명이 함께한다.
백 대표는 "올해 봄 전시감독직을 수락한 뒤 희정당을 찾았을 때 전통과 근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을 보며 조선 공간의 미학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희정당 곳곳에 남은 '질서'였다.
희정당에 남아 있는 목조 구조를 들여다보며 머름(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의 높이가 어떤지,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백 대표는 "희정당에는 샹들리에, 화려한 벽지 등 다양한 장식품이 남아있다"며 "과거 희정당에 머무른 사람들이 느꼈을 공간감을 함께 느끼도록 기획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임금이 관리나 손님을 만나던 공간에는 환대의 의미를 담아 국가무형유산 최성우 보유자가 작업한 대형 궁중채화(宮中綵花) 작품을 배치했다.
궁중채화는 궁중 잔치나 의례에 쓰기 위해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이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온 오종 작가, 달항아리의 대가 권대섭 작가 등과 협업해 오얏꽃 문양의 조명 아래를 함께 꾸몄다.
궁궐 '직원'들이 일하며 머물던 공간인 서행각 찬시실은 청색, 흰색, 적색, 흑색, 황색 등 오방색(五方色)으로 꾸미고 전통 기법으로 제작한 공예품을 채웠다.
그는 이번 전시를 제안받자마자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백 대표는 "궁궐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며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를 보기 전 희정당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했다.
"희정당을 처음 갔을 때 그 느낌이 기억납니다. 이 공간에서 펼쳐진 다양한 사건, 인물, 역사적 층위가 쌓인 공간과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과 잇달아 작업한 그는 다음 목표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이자 조선 후기 중요 문인화인 '세한도'(歲寒圖·정식 명칭은 '국보 김정희 필 세한도')를 꼽았다.
백 대표는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가 '세한도'"라며 "(박물관 등에) '세한도의 방'이 생겨서 매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희정당 전시는 현장에서 신청해 관람할 수 있다.
국가유산진흥원 관계자는 "문화유산 안전을 위해 시간당 4차례로 나눠 100명 정도씩 입장할 방침"이라며 "하루 700∼800명이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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