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작가 "가족과 상실의 아픔, 상상력으로 생생히 전할 것"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대상작 '역행기' 명동예술극장서 내달 개막
신재훈 연출 "고통은 새로운 힘…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언어 믿었다"

조윤희

| 2026-08-24 18:27:47

▲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대상 수상작 '역행기' 김주희 작가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대상 수상작 '역행기' 신재훈 연출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 대상 수상작 '역행기' 라운드 인터뷰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인류 최초의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여신이 하늘과 땅의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저승의 힘까지 얻고 싶어서 하강한 여정이 굉장히 용감하게 느껴졌어요. 오늘날의 여성들이 그 여신으로부터 힘을 얻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신화를 살펴보게 됐습니다."

김주희 작가는 2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역행기'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번 작품을 쓰면서 수메르 신화를 차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2024년 15년 만에 재개된 국립극단 창작희곡공모에서 303편의 경쟁작을 뚫고 대상을 받은 '역행기'가 약 2년간의 작품 개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20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고대 수메르 신화 속 인안나 여신의 지하 하강 서사를 한국 근현대사의 모진 세월을 살아낸 3대 여성의 삶과 엮어 펼쳐낸다.

김 작가는 관객들에게 익숙할 그리스·로마 신화 대신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수메르 신화를 택한 이유에 대해 "인안나 여신의 신화가 적혀있는 수메르 점토판의 글자들이 불에 구워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야기가) 굉장히 뜨겁게 느껴졌다"며 "작가로서 뒤편에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를 뜨거운 순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땅 밑 지하 세계'라는 환상적인 배경을 취하면서도 가족과 상실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다룬다.

김 작가는 신화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 "상실이란 누구나 익숙해지지 않고 계속 아픈 문제인데, 신화 모티브와 판타지적 상상력을 거쳐야만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가진 이야기이자 생생한 감각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작가로서의 확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독창적이고 방대한 세계관을 무대화하는 과정은 창작진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다.

신재훈 연출은 "많은 분들이 '이걸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작가님한테 고쳐 달라는 말 하나 안 하고 그대로 할 거야'라고 계속 다짐했다"며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님의 언어를 믿었고, 표현의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대사가 의미하는 바를 찾으며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갔다"고 밝혔다.

김 작가 역시 "연출님이 전적으로 텍스트를 존중해 주셔서 정말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대사가 장면 중에 하나도 없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소중하게 대해주셨다"며 "현실적인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보니까 개개인의 상상이 들어오면서 색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는 인간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공간 단위인 '방'이 싱크홀처럼 끝없이 지하로 떨어지는 구조로 꾸며진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인간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공간 단위인 방이 지하 세계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구조"라며 "실제 무대에서 또 다른 층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은 유지하되 방 상공에 그려지는 것들이 계속 바뀌도록 영상을 활용하고 천장에 투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김희경 영상디자이너는 "영상이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장소 자체가 등장인물에 말을 거는 듯한 움직임으로 표현되도록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창작진은 이 작품이 밑바닥에서 찾은 '연결'과 '새로운 힘'을 관객에게 전하길 기대했다.

신 연출은 "고통은 절망일 수도 있지만 작가님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절망적인 울부짖음 외에도 해방감이 있을 수 있듯이, 고통의 순간에 느껴질 수 있는 다른 감각들에 집중하며 관객들의 일상 속 고통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풀을 보며 만약 저 아래에도 뿌리내린 힘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출발했다"며 "바닥의 바닥으로 연결되는 힘이 있다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앞선 세대가 살았던 삶에서 내려고 했던 힘을 전승하듯 지상으로 가져오는 기반을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고대 신화의 환상성과 현실의 묵직한 고민을 결합한 연극 '역행기'는 내달 3일부터 13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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