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쇠붙이가 악기로 오월 아픔은 그림으로…광주비엔날레 개막

다양한 존재의 속도와 규모로 본 변화…'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수천 년 풍화 견딘 제주 화산암·496시간 사운드…작가 43명 작품 한자리에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서 11월 15일까지

박의래

| 2026-09-04 18:20:41

▲ 작품 설명하는 호추니옌 예술감독 (전남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투어에서 호추니옌 예술감독이 전시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가 주제인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9.4 iso64@yna.co.kr
▲ 광주비엔날레 프레스투어 (전남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 프레스투어에서 참석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가 주제인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9.4 iso64@yna.co.kr
▲ 권병준·박찬경 작 '불림' (전남광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설치된 권병준·박찬경 작가의 '불림'. 2026.9.4 laecorp@yna.co.kr
▲ 골딘+세네비 작 '송진 연못' [광주비엔날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광주비엔날레, 오월어머니집 작품 (전남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가 주제인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9.4 iso64@yna.co.kr
▲ 광주비엔날레서 펼쳐진 예술 공연 (전남광주=연합뉴스) 민현기 기자 = 4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프레스데이에서 참석자들이 행위예술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이어진다. 2026.9.4 mhk0226@yna.co.kr
▲ 재클린 키요미 고크 작 '송진 연못' [광주비엔날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개막 앞둔 광주비엔날레 미리 보는 참석자들 (전남광주=연합뉴스) 민현기 기자 = 4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용봉동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제16회 광주비엔날레 프레스데이에서 참석자들이 개막을 앞두고 공개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열린다. 2026.9.4 mhk0226@yna.co.kr

(전남광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전시장 바닥에 다양한 형태의 제주 화산암들이 놓였다. 한순간의 분출과 냉각으로 형태를 얻은 뒤 수천 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딘 화산탄·용암종유·용암석순·풍화혈이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온 이 돌들이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출품됐다. 변화는 단절과 폭발의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느린 시간 속에서도 축적된다는 전시의 메시지를 압축한 상징이다.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의 예술감독을 맡은 호추니엔은 "돌 하나하나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축적돼 있고, 냉각과 풍화가 함께 담겨 있다"며 "이번 전시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다른 속도와 규모로 변화하는 것을 살펴보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주제로 4일 개막식을 열고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호추니엔 감독과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 최경화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했다.

43명(팀)이 참여한 전시는 여러 장소에 작품을 분산하기보다 비엔날레 전시관 한 곳으로 모았다. 참여 작가 수를 줄이는 대신 작가들의 작업과 오랜 실천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시의 밀도를 높였다는 설명이다.

전시는 '분자와 나', '신체와 관계', '풍경과 배움', '우주와 변화', '공기와 발화' 5개 전시실로 구성됐다. 분자와 신체,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전시는 관계와 공동체, 도시의 풍경과 역사, 행성의 변화로 시선을 옮긴 뒤 공기와 소리, 호흡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권병준·박찬경의 광주비엔날레(GB) 커미션 신작 '불림'은 녹인 금속으로 만든 악기와 원형을 간직한 금속 물체를 함께 배치해 소리와 진동이 퍼지는 설치 작업이다. 광주·전남 시민들이 기증한 쇠붙이는 용광로를 거쳐 악기와 소리 장치로 다시 태어났다.

작품은 무당이 될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쇠붙이를 모아 방울·징·꽹과리 등을 만드는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출발했다. 쓰임을 다한 쇠는 불과 소리를 거쳐 새 형태를 얻고 공동체의 의례 도구로 돌아온다.

쇠걸립이 공동체가 한 사람을 무당으로 받아들이고 돌봄과 책임의 관계를 맺는 과정이듯, '불림'은 시민의 기증품을 매개로 예술가와 비엔날레, 지역사회를 잇는다.

두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시민이 내놓은 쇠붙이에 담긴 각자의 기원과 기억을 소리로 되돌려주며, 비엔날레를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의 축제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니나 카넬의 '상동곡(40Kg)'은 모든 것은 언젠가 형태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는 대야에 담긴 물에 초음파 진동을 가해 미세한 안개로 바꾼다. 이 안개가 곁의 시멘트 가루를 천천히 굳게 하며, 변형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골딘+세네비의 '송진 연못'은 약 2t의 호박색 송진으로 만든 웅덩이다. 나무가 상처를 덮고 해충을 막기 위해 분비하는 보호 물질인 송진은 한편으로 연료로 채취되는 자원이기도 하다. 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송진을 분비하지만, 이는 도리어 인간에 의한 착취를 불러오는 요소가 된다. 보호와 치유가 위협과 착취로 뒤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불안한 풍경이다.

'오월어머니집'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잃거나 부상한 여성들이 그린 그림 322점과 인터뷰 책을 선보인다. 꽃과 과일, 가족의 추억부터 1980년 5월의 폭력, 촛불집회와 연대의 장면까지 담긴 화면은 사적인 기억이 공동의 역사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 기간에 한 차례 작품을 교체해 어머니들의 삶과 기억을 계속 새롭게 꺼내 보인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한 번 보고 끝나는 작품뿐 아니라, 공연 시간과 전시 기간, 밤의 전시장 풍경에 따라 경험이 달라지는 작품들도 있다.

안젤라 고의 '크래프트'는 제2·3전시실을 잇는 외부 통로에서 하루 네 차례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미세하고 정교한 움직임은 다리와 건축, 주변 풍경 속에서 살아 있는 신체의 이미지를 새로 만든다.

김선익의 '공장의 불빛'은 전체 분량이 496시간에 이르는 사운드 작품이다. 전시 기간 매일 전시관이 문을 여는 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재생된다.

관람객은 방문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대목을 듣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제임스 T. 홍의 '사과'와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은 입장권이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과'는 전 세계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공식 사과를 모은 약 11시간 분량의 영상으로, 매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전시관 외벽 삼면에 투사된다. 책임과 반성의 언어는 밤의 광주와 공공 공간으로 확장된다.

광장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제5전시실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은 기계 장치와 송풍기, 피드백으로 만든 미로형 설치이자 다채널 테크노 사운드 작업이다.

투명한 흡음성 비닐 풍선 구조물은 공기를 머금고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킥 드럼과 조명이 클럽과 닮은 공간을 만들지만, 흥분 대신 낯선 긴장과 고립감을 불러낸다.

호추니엔 감독은 "변화는 한 번의 극적인 사건이나 파열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축적 속에서 궤적을 만들기도 한다"며 "예술 작품을 빠르게 훑기보다 작가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실천의 결과물을 오래 바라보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과 주변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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