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9-01 09:00:02
(충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약 1천600년 전 백제가 물을 저장하고 관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시설이 충북 충주에서 확인됐다.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둔 시기(기원전 18년∼475년) 흔적으로, 당시 충주 일대를 중요한 거점으로 삼아 성을 쌓고 운영한 상황을 엿볼 수 있어 주목된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사적 '충주 장미산성'을 발굴 조사한 결과,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목조 집수지(集水池)를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집수지는 지표수나 지하수를 모아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관리하는 일종의 '물탱크'로, 성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핵심 시설이다.
나무를 주재료로 한 집수지는 2024년 11월 북쪽 계곡 부근에서 발견됐다.
안쪽 벽 한 면의 길이는 약 6.5∼6.7m, 높이는 약 1.6∼1.8m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바닥에는 우물 정(井)자 형태로 공간을 나눈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벽면은 길이가 7m가 넘는 참나무, 밤나무 등을 통째로 가공해 9단으로 쌓았고 모서리는 목재 끝을 가공해 서로 맞물리도록 정교하게 구성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대형 목재 확보와 운반, 정밀한 가공, 석축 보강 등까지 고려해 계획적으로 집수지를 축조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수지는 최대 약 8만3천L(리터)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추정된다.
연구소 측은 "최대 용량의 70% 정도를 실제로 사용한다고 보면 (성안에 머무르는 사람) 300명이 두 달 반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집수지에 모아둔 물은 주로 일상생활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집수지 주변에서는 우물 혹은 샘으로 볼 수 있는 집수시설이 발견됐는데, 대형 집수지의 물은 생활용수로 쓰고 작은 집수지는 식수로 썼을 것이라고 연구소는 전했다.
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집수지 안에 남은 흔적을 찾는 데 주력해왔다.
내부에 쌓인 흙을 '물체질'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쌀·팥 등과 같은 곡물류와 복숭아·자두 등의 씨앗, 동물 뼈 등이 확인됐다.
물체질은 구멍이 촘촘한 채반 위에 흙을 놓은 뒤, 채반을 물에 넣어 여러 차례 씻어내면서 흙 속에 남은 물질을 걸러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연구소 측은 "국내에서 발견된 집수지 가운데 내부에 쌓인 흙을 모두 물체질하며 미세 유물과 유기물까지 수습하는 사례는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집수지 바닥에서는 새끼 돼지와 개의 뼈도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연구소는 의도적으로 깬 것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 등이 여럿 확인된 점을 볼 때 과거 의례와 관련한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집수지 일대에서 찾은 유물 대부분은 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곡식이나 흙 등을 퍼 담아 나르는데 쓰는 생활 도구인 삼태기, 소 코뚜레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가장 이른 시기 유물로 여겨진다.
연구소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소 코뚜레의 경우, 크기로 보아 어린 소에 썼을 가능성이 있다"며 "장미산성과 주변 생산 기반을 잇는 운송과 유통의 단서"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자루 즉, 손잡이가 온전히 남은 도끼도 주목하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목제로 된 자루가 남은 완전한 형태의 철제 도끼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됐으며 나무를 베거나 다듬는 공구로 썼을 것으로 본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 아래에서 찾은 토목 기법도 연구 가치가 크다.
장미산성에서는 목재 등으로 틀을 짠 뒤 그 안에 일정한 두께의 흙을 켜켜이 다져 쌓는 판축(板築) 기법이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판축은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같은 백제 왕성을 대표하는 축성 기술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 안쪽에서는 백제 한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뚜막, 고급 칠기, 토기 등도 여럿 발견됐다.
연구소는 "장미산성은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백제가 중앙의 기술과 자원을 투입해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한 중원 지역의 핵심 거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올해 연말까지 국원관 전시실에서 그간의 발굴 성과와 주요 출토 유물을 소개할 예정이다. 4∼5일에는 장미산성 발굴 현장도 공개한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 백제가 중원 지역의 거점을 어떻게 구축하고 운영했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 성과를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충주 장미산성은 한강을 따라 충주 분지로 진입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첨예하게 대립한 중원 역사문화권의 대표적인 산성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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