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풍경부터 금강산까지…정선의 눈으로 다시 만나는 조선

'경교명승첩'·'해악전신첩' 전작 최초 공개…정선 작품 216점, 역대 최대규모 전시
정선 탄생 350주년 특별전…대구간송미술관서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박의래

| 2026-09-15 17:59:22

▲ 정선의 '경교명승첩' 중 '시화환상간'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전시 전경. 2026.9.15. laecorp@yna.co.kr
▲ 정선의 '경교명승첩' 중 '독서여가'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정선 작 '청풍계'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전시 전경. 2026.9.15. laecorp@yna.co.k
▲ 정선의 '금강전도'(왼쪽)와 '풍악내산총람'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정선 작 '도산서원'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대구간송미술관에 전시 중인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2026.9.15. laecorp@yna.co.k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붓과 벼루, 종이를 사이에 두고 두 노인이 마주 앉았다.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1676∼1759)과 평생의 벗이자 시인인 사천 이병연(1671∼1751)이다.

두 사람은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기로 약속했다. 정선은 이 약속대로 한강을 비롯해 서울의 빼어난 경치 등을 그렸다.

여기에 두 사람이 시화 그림을 교환하기로 약속하는 장면(시화환상간), 이병연의 시가 늦자 정선이 이병연의 서재 '촉재'로 사람을 보내 시를 빨리 보내 달라고 독촉하던 모습(촉재제시), 책이 빼곡한 작은 방 앞 툇마루에서 화초를 바라보는 자기 모습을 담은 작품(독서여가) 등도 더했다.

이렇게 정선의 작품 33점을 담은 화첩이 '경교명승첩'이다. 이 '경교명승첩'의 작품 전체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오는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 열린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정선 탄생 35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 '겸재 정선-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에서는 국보 '금강전도'를 비롯해 정선의 작품 84건 216점을 선보인다.

국보 1점, 보물 71점을 비롯해 역대 정선 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했으며, 지난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 전시의 흐름을 잇는다.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지난해 전시가 진경산수화부터 관념산수화, 고사인물화, 화조영모화에 이르기까지 정선 회화의 폭과 화풍의 변화,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폭넓게 조망했다면, 이번 전시는 정선의 삶과 교유 관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설명했다.

대표 작품은 '경교명승첩'이다. 정선에게 한양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스승과 벗, 후원자와 교류하며 화업의 기반을 다진 공간이었다. '경교명승첩'에는 정선과 이병연의 우정뿐 아니라 한양 도성과 한강변, 서울 근교 명승이 담겼다.

정선의 시선을 따라가면 오늘날 도시 개발로 크게 달라진 조선 후기 한양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강 주변의 풍경과 압구정, 목멱산, 양천현아, 개화사 등 당시 정선이 오갔던 서울과 한강 일대의 모습이 화첩 곳곳에 남아 있다. 산수화첩인 동시에 정선이 누구와 교류하고 어디에서 머물며 그림을 그렸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정선이 64세에 인왕산 동쪽 기슭 '청풍계'를 그린 작품은 별도 전시 공간에서 단독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에 있던 한양의 명소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사용과 척화를 주장한 그의 아우 김상헌의 충절을 기리는 곳이다. 정선의 스승 김창흡은 김상헌의 증손자로, 이 집안과 청풍계는 정선의 삶에도 깊이 연결돼 있다.

허용 총괄은 "정선은 여러 번 청풍계를 그렸는데 이 작품이 크기와 중후함, 완성도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선하면 빠질 수 없는 금강산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정선은 36세에 처음 금강산을 찾았고 이후 평생 금강산을 그렸다.

그가 36세에 그린 '신묘년풍악도첩'에는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명승부터 내금강과 해금강의 대표 경관까지 13폭에 걸쳐 담겼다. 섬세한 필선과 담채를 사용해 실제 경관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반면 72세에 완성한 '해악전신첩'은 금강산과 관동의 명승을 따라가며 노년기 정선의 진경산수 세계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보다 원숙해진 화풍으로 눈앞의 경치를 빠짐없이 옮겨 그리기보다 필요한 부분은 덜어내고, 산세의 특징과 분위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그림 21폭과 시문 41편으로 구성됐으며 수록 회화를 모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선의 대표작인 '금강전도'와 '풍악내산총람'도 함께 전시된다.

'금강전도'는 겨울 금강산인 개골산의 수많은 봉우리를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듯한 시점으로 한 화면에 담은 정선의 대표작이다. 빽빽한 봉우리와 골짜기를 화면 가득 채워 실제 산세를 넘어선 압도적인 기운을 전한다.

반면 '풍악내산총람'은 내금강 곳곳의 명승을 보다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람객은 두 작품을 비교하며, 정선이 하나의 금강산을 거대한 산세의 인상으로 압축하기도 하고 주요 경관을 따라가며 세밀하게 안내하기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선의 발걸음은 한양과 금강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경북 경산 하양과 포항 청하에서 지방관으로 일하며 여러 지역의 명승을 그림으로 남겼다. 전시에는 대구를 그린 '달성원조도'를 비롯해 '도산서원', '내연산삼용추', '박생연' 등이 소개된다.

중국 고사를 조선의 산수와 인물로 풀어낸 고사인물화와 꽃·새·동물을 생동감 있게 그린 화조영모화도 만날 수 있다. 진경산수화의 거장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정선의 다양한 화풍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다면 상설 전시 중인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 '미인도'도 놓치기 아쉽다. 어두운 전시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조선의 미인과 독대할 기회다. 한복의 깃과 소매, 섬세한 주름 등 미인도의 세부를 차분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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