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현
| 2026-09-22 15:22:33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제가 공연에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함께하는 기쁨에 대한 경험'이에요."
공연 연출가 이진엽은 관객 참여형 공연을 기획하는 이유로 공연장이 가진 소통의 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다음 달 17∼18일 국립극장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프로그램 일환으로 관객 참여형 공연인 신작 '찰나의 찰나'를 선보인다. 참여자들은 공연장에 깔린 모래로 그림을 그리며 낯선 이들과 비언어적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진엽 연출은 22일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신작 관련 인터뷰에서 "다른 낯선 곳보다 공연장에선 '함께 하기'가 좀 더 쉽다"며 "관객이 경계를 풀고 '함께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모래 예술 작업으로 유명한 덴마크 시각미술가 헬레 호브가 공동 연출로 참여했다. 배우 서현성과 바톨 압둘라가 관객과 함께 모래 그림을 그리는 퍼포머로 출연한다.
공연에 참여하는 200여 명의 관객은 초반부 배우들의 안내를 따라 모래 그림을 그리다가 점차 자유롭게 각자 빗자루 등을 활용해 그림을 만든다. 그림들은 무대에서 계속해서 생겼다 사라지고 서로 뒤섞인다.
이 연출은 "공연에서 관객은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 올라와 함께 하는 사람이며, 그림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서로 섞이기도 하고 타인에 의해 예기치 못한 형태로 변화하는 모래 흔적을 통해 관객은 말로 하는 것과는 다른 소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 연출은 또한 "공연은 '찰나'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모래 그림을 통해 삶에 대한 유한성,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공연은 "놀이이자 명상"이라며 "관객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모래 이미지를 따라가며 생각을 비우고 순간순간에 몰입하기를 바랐다"고 했다.
관객이 무대를 함께 구성하고 공연 일부가 되는 것은 이진엽 작품 세계의 특징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공연 창작 단체 '코끼리들이 웃는다'는 관객 참여와 장소성, 사람들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 시기에 선보인 '차차차 드라이브스루'에선 관객이 자신의 자동차를 타고 거대한 야외 무대로 진입하게 했고, '의자들'에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 무작위로 배치된 의자에 앉은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도록 했다.
이 연출은 "언어가 아닌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공연을 주로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관객 참여 요소를 작품에 많이 포함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올해 7월 세계적 권위의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돼 대표작 '물질'을 선보였다. 현지에선 '연대를 성찰하게 하는 독창적 작품'이란 호평이 이어졌다. 이 공연은 관객이 수조 속에 갇힌 다양한 역할의 배우들에게 말을 걸 수도 있고 직접 수조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 연출은 "관객이 누군가와 마주하는 경험, 연결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며 "낯선 이와의 연결을 불편해하시는 분도 있지만, 공연장을 돌고서 이런 생각이 바뀌는 분도 있다. 이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관객의 연결을 시도해보려 했다"고 참여형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연예술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아비뇽에서 공연을 올린 그는 "다섯 살부터 9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관객이 무대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작품의 주제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국적을 떠나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연출은 "아비뇽 페스티벌과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준비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며 "다음 신작으론 어둠 속 시각과 청각적 감각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공연을 구상 중"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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