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시에는 시간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있죠"

시선집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 발간…명시 50편 수록
'우크라이나 침공 항의' 1인 시위…"자유 위한 싸움 끝나지 않아"

이은정

| 2022-03-21 17:59:19

▲ 시선집 '어떤 시, 안녕 내 사랑' 출간한 최영미 시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영미 시인이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선집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 출간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3.21 ryousanta@yna.co.kr


▲ 신간 시선집 소개하는 최영미 시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최영미 시인이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선집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 출간 간담회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다. 2021.3.21 ryousanta@yna.co.kr

최영미 시인 "시에는 시간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있죠"

시선집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 발간…명시 50편 수록

'우크라이나 침공 항의' 1인 시위…"자유 위한 싸움 끝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최영미 시인은 이탈리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2020년 3월.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 부른 노래 '벨라 차오'(Bella Ciao·안녕 내 사랑)를 동영상으로 처음 접했다. 노동요였던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빨치산들이 가사를 바꿔 부른 저항 가요였고 자유를 염원하는 이들의 애창곡으로 자리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 시인은 최근 자신이 엮고 해설을 붙인 시선집에 이 제목을 붙였다. 지난해 조선일보에 연재한 시를 모은 '최영미의 어떤 시, 안녕 내 사랑'이다.

그는 2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안녕 내 사랑'은 감회가 솟아오른 노래였다"며 "싸우러 나가면서 연인에게 '굿바이'라고 고하는 어두운 의미인데, 만약 내 사랑이 시라면 난 더 이상 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는 심한 고립감이 자리했다. 문단 기득권층의 성폭력 행태를 고발하며 소송전까지 치른 최 시인은 "이후 출판사들 원고 청탁이 끊기고 매장당한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시를 발표할 창구가 없어 설립한 1인 출판사(이미출판사)는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존폐까지 고민하게 됐다.

그는 "시를 통해 통찰력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고 생각한다"며 "시에는 시간과 고통을 견디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시선집에 실린 시들은 수년간 최 시인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 작품들이다. 그는 중국 북송 때 시인 소동파, 고대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최치원, 정약용, 허난설헌, 김명순, 문정희 등 동서고금의 시 50편을 골랐다.

"대중이 조금 어렵더라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고 젊은 세대에게 읽히고 싶은 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를 모았어요. 소동파의 시 하나를 소개하려고 그의 시집을 다 읽었고, 중국 고전 시경(詩經)의 시 몇백 편을 읽었죠. 좀 더 좋은 시를 찾고 싶었어요." 작품 재수록을 위한 저작권료로 200여만 원을 들였다.

통일신라 학자 최치원의 '곧은 길 가려거든' 등 그가 고른 시에는 촌철살인이 있다.

'모두들 봄 꾀고리의 고운 소리만 사랑하고/ 가을 매 거친 영혼은 싫어들 하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최치원 '곧은 길 가려거든')

당나라로 유학 갔다가 귀국한 최치원은 어지러운 신라를 구하고자 진성여왕에게 정책을 담은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못했고,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유랑했다.

최 시인은 "1천200년 전 최치원의 글이 무척 감동적이었다"며 "간결하면서도 우아했다. 최치원의 시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 서문을 읽어보라고 꼭 권하고 싶다. '붓으로 먹고 살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저도 글로 밥 먹는 사람이라고 늘 말해왔기에 표현이 와 닿았다"고 소개했다.

조선 전기학자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의 시를 고르면서는 엄청난 원칙주의자인 그에게서 정서적으로 동일시가 됐고, 소동파에게서는 어려운 것도 간결하게 쓰는 재능에 탄복했다고 한다.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같이 식었고/ 육신은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롭네/ 너의 평생 공적이 무엇이더냐?/ 황주 혜주 그리고 담주뿐이네.'(소동파 '금산사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에 쓴 시')

최 시인은 "황주, 혜주, 담주는 소동파가 귀양다닌 곳으로 인생을 담아 쓴 시"라며 "'육신은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롭네'란 대목에 소동파가 부럽기도 했다"며 미소지었다.

그는 "치매로 편찮으신 어머니만 아니었으면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미국 CNN에서 우크라이나 뉴스를 보며 임산부 등 고통받는 사람들 모습에 1주일 내내 울었어요.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셨고 소설을 쓰고자 전쟁사를 많이 읽었죠. 총을 들고는 못 싸우더라도 화염병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죠."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달 4일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SNS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인류 평화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대통령은 없는가.(중략)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EU)에 가입시켜라.'

그는 "자유를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러시아, 미얀마 등지 독재자들이 극성을 부리지만, 사악한 권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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