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훈
| 2021-11-10 17:57:14
'국민화가' 박수근의 진면목…국립현대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종합)
'이건희 컬렉션' 33점 등 174점 소개…19점은 첫 공개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온 국민이 사랑하는 인기인에게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칭호다. 화가 중에는 박수근(1914~1965)이 '국민화가'로 불린다.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화풍으로 사랑받는 그의 작품은 미술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주요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수억~수십억 원에 거래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화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지만, 정작 그 수식어에 비해 박수근의 삶과 작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11일 개막하는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접할 기회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작품 총 174점과 화집,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자료 100여 점까지 역대 최대 규모로 작가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인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도 33점 포함됐다.
전체 전시 작품 중 유화 7점과 삽화 원화 12점 등 19점은 처음 공개된다. 이 중 '이건희 컬렉션' 작품은 '마을풍경', '산' , '세 여인' 등 3점이다.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 이후 처음 여는 박수근 개인전이기도 하다. 두 미술관 소장품 외에 국내외 기관과 컬렉터들의 소장품이 출품됐다.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각계의 도움을 받아 박수근의 주요 작품들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았다. 다시는 이번처럼 한 곳에서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두 살 무렵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늘날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열여덟 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하면서 화가의 꿈을 굳혔다.
한국전쟁 때 월남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자리 잡은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 내 매점(PX)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폐허가 된 서울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묵묵히 작업을 계속해 명성을 얻던 그는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51세에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먼저 밀레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0대 시절 수채화부터 1950년대 유화까지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어 한국전쟁 후 1953년 재개된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을 받은 '집'을 비롯해 '나무와 두 여인' 등 대표작이 소개된다. '나무와 두 여인'은 박수근과 미군 PX에서 함께 일했던 박완서가 1970년 발표한 첫 소설 '나목'에도 등장한다.
박수근은 창신동 집에서 명동 PX, 을지로 반도화랑을 오가며 마주한 거리 풍경, 이웃들의 모습을 화폭에 주로 옮겼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서구 추상미술이 급격히 유입돼 국내 화단을 풍미했지만, 그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물감을 여러 겹 쌓아 올려 우리나라 옛 흙벽이나 화강석 불상처럼 거칠거칠한 질감을 만들고, 색과 형태를 단순화해 시대를 기록했다.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불운한 화가, 소외된 화가 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화가 박수근의 성취를 온전히 보고자 했다"며 "그가 살았던 1950~1960년대 한국의 소박한 환경, 그리고 전통 탐구와 현대화의 경계에서 만들어낸 현대적인 화풍에 주목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내년 3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전쟁과 가난으로 참혹했던 1950~60년대 서민들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박수근의 작품을 통해 왜 그가 '국민화가'로 불리는지 보여준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