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17 17:41:49
(제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북은 하늘을 울리고, 대양(징)은 땅을 울리고, 설쇠(꽹과리) 소리에 심방(무당)이 춤을 춥니다. 일만팔천 신전님, 천도천왕 지도지왕 인도인왕,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에 아뢰어 도립미술관 이 안에서 굿을 하려 합니다."
17일 제주도립미술관에 한바탕 굿판이 열렸다. 제주큰굿 보유자 서순실 심방의 집전으로 열린 굿 '다시 살으라'의 초감제다.
제주큰굿은 2021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무속의례로, 신을 맞이하고 찬양한 뒤 보내는 제의 형식을 갖춘다.
초감제는 제주큰굿의 첫머리에 놓이는 제차(祭次)다. 하늘과 땅의 모든 신을 청해 앉히는 굿의 문을 여는 절차다.
북과 대양, 설쇠가 울리자 붉은 무복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서 심방이 전시장 한가운데서 춤을 추며 제주의 신들을 불러냈다.
그는 "오늘 오신 영혼들 저세상으로 가면서 제주도민의 힘들고 괴롭고 고통받은 것 거두어 가시라"며 "다시 살으라"고 염원했다.
굿이 열린 곳은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이진경 작가의 전시 공간이다.
전시장에 굿의 소리와 의례가 더해지면서 이진경 작가가 되짚은 유배와 민란, 상흔의 역사는 현재의 염원과 맞닿았다.
작가는 '난 그 초록인가'라는 주제 아래 1801년 신유박해로 제주에 유배된 정난주, 1813년 양제해의 모변, 1862년 임술제주민란, 1898년 방성칠의 난, 1901년 이재수의 난 등 제주 저항의 역사를 담아냈다.
전시장에는 제주 민란과 관리들의 횡포, 제사와 신의 이름 등이 이진경 작가 특유의 필체로 층층이 적혀 있었고, 사이사이 드로잉과 콜라주, 바다에서 밀려온 나무 오브제가 놓였다.
제주 바다와 풀벌레·빗소리, 민요와 노동요가 흐르는 공간 전체가 제주의 역사를 품은 하나의 설치 작품처럼 꾸며졌다.
제주의 비극적 역사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가 표현하려던 것은 고통이나 비극의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쉽게 꺾이지 않는 생명의 힘, 억울한 역사 속에서도 삶을 이어온 존재들의 감각이다. 작가는 이를 '초록'으로 표현했다.
이곳에 굿판이 더해지면서 고통의 역사를 떠나보내고 제주도민과 관람객의 안녕을 비는 의례가 펼쳐졌다. 작품이 말하는 '초록'의 생명력과도 맞닿는 순간이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작가는 "이 땅의 뒤틀린 근대사와 현대사라는 시간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치유하는 작업"이라며 "오늘의 굿이 전시의 화룡점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을 주제로 11월 15일까지 열린다.
20개국 69개 팀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한 이번 비엔날레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 레미콘 등 제주 5개 전시공간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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