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3-12-12 16:24:44
"백제금동대향로 발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죠"
발굴 30주년 맞아 고유제 열려…발굴 참여자들 한자리에
내년 2월까지 기념전시…2025년엔 국보관서 선보일 예정
(부여=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백제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한 영령들, 향로를 제작한 장인들, 그리고 토지신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제를 올립니다."
12일 충남 부여 능산리 사지(寺址·절 터)의 목탑 터 앞.
은화수 국립부여박물관장이 예를 갖춰 잔을 올리자 고유제(告由祭·큰 일이 있을 때 그 내용이나 이유를 고하는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형식을 놓고 보면 여느 고유제와 비슷해 보였지만, 향을 피우는 모습은 달랐다.
봉황이 장식된 뚜껑을 열어 향에 불을 붙인 뒤 다시 뚜껑을 덮자 이내 연기가 나오더니 향로를 감쌌다.
한 마리의 용에서 연꽃으로, 또 층층이 중첩된 산봉우리 너머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향로, 1993년 12월 12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백제 금동대향로' 모형이다.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으로서 조사단을 이끌었던 신광섭 전 백제문화제재단 대표이사는 "현장에 달려와 엎드린 채 손으로 더듬어가며 수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향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신 전 관장을 비롯해 이날 고유제에 참석한 조사단원들은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어둠 속에서 어렵게 찾은 향로는 박물관에서 수년간 일한 그들에게도 '신기한' 유물이었다. 일부 장식만 보였을 때는 굵은 고리 형태의 귀걸이인 줄 알았다고 한다.
당시 학예연구실장이었던 김정완 전 국립대구박물관장은 "차가운 물에 손을 넣고 있다가 팔짱을 끼며 녹이기를 반복하며 작업했다"며 "처음 봤을 때 흙이 곳곳에 묻어있던 게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학예연구사로서 발굴 조사 현장을 지휘했던 김종만 충청문화재연구원장은 "처음 나올 때 '뭔가 큰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물이 얼기 전에 무조건 꺼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향로가 발굴된 당시 모습을 재현한 공간을 한참 쳐다보기도 했다.
신 전 관장은 역사적인 발굴에 대해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는 "(절터) 인근은 예부터 기와 조각 등이 여러 점 나오면서 박물관에서도 주의를 기울인 지역"이라며 "조금이라도 발굴 조사를 더 진행해 자료를 찾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초대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 홍사준 선생의 산소가 인근에 있다고 설명하며 "두어 시간 허리를 굽혀 작업하다 일어섰을 때 관장님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 올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발굴 당시 30∼40대 청춘이었던 조사단원은 어느새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됐지만, 다시 향로와 마주하자 그 옛날로 돌아간 듯 추억에 잠겼다.
당시 박물관 소속 연구원이자 조사보조원으로 참여한 진성섭 세종문화재연구원 부원장은 "카메라 셔터가 안 눌러질 정도로 참 추웠는데…"라며 회고했다.
"날은 어둡고, 또 춥고, 기록을 잘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수백장을 찍었어요. 발굴하는 내내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였죠. 평생 잊을 수 없는 풍경과 기억 아닐까요." (웃음)
친구들과 함께 전시를 보던 한 여성 관람객은 '앞에 계신 분들이 향로를 발굴한 당사자들'이라는 말에 "좋은 유물을 발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역사적인 날에 대단하신 분들을 만났다"며 조사단원들의 옛 사진과 현재 모습을 번갈아 봤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내년 2월 12일까지 발굴 30주년 기념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부여박물관은 향로를 포함해 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4건을 위한 별도 공간도 준비하고 있다.
은화수 관장은 "2025년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백제국보관'이 준공될 예정"이라며 "국보관 건립과 함께 전시관도 개편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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