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으로 친절한 시민들의 이야기…뮤지컬 '컴프롬어웨이'

9·11 테러 당시 실화 바탕에 둔 뮤지컬…독백으로 생생한 감정 전달

최주성

| 2023-11-30 11:27:29

▲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사진 [쇼노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사진 [쇼노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사진 [쇼노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쇼노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비현실적으로 친절한 시민들의 이야기…뮤지컬 '컴프롬어웨이'

9·11 테러 당시 실화 바탕에 둔 뮤지컬…독백으로 생생한 감정 전달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5일간 동물 19마리! 사람은 7천명!"

세계를 경악하게 한 9·11 테러가 발생하던 날, 캐나다에 위치한 작은 도시 갠더의 일상은 멈춰 섰다. 미국으로 향하는 하늘길이 전부 막히며 승객 7천명가량을 태운 비행기 38대가 갠더 공항에 불시착한 것이다.

도시 인구 1만명에 필적하는 수의 사람들을 보고 당황하는 순간도 잠시, 갠더 시민들은 승객을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질서 유지를 위한 경찰서는 하나에 인프라도 부족하지만, 이들은 "도와달라 말하면 무엇이든 도와준다"라는 친절함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지난 28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컴프롬어웨이'는 비현실적으로 친절한 시민들의 이야기다. 새벽 4시부터 승객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고, 승객들이 씻을 수 있도록 집을 기꺼이 내어주는 갠더 주민들을 보면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이 익숙한 시대에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작품은 테러 당시 발생한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다. 원작의 대본과 작곡을 맡은 아이린 산코프와 데이비드 헤인은 2011년 갠더에 방문해 현지인을 인터뷰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은 테러 당일인 화요일부터 갠더에 불시착했던 비행기가 모두 이륙한 일요일까지의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제시한다. 중간중간 테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아들을 둔 승객, 갠더에서 처음 만난 서로에게 호감이 생긴 남녀의 '사랑의 불시착'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독백으로 들려준다.

테러가 발생했던 기억을 전하는 대목은 다큐멘터리 연출을 떠오르게 한다. "가족과 전화하려는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기 위해 전화기에 '고장' 표시를 써 붙여야 했다"는 주민의 독백에서 당시의 혼란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성별, 국적, 언어가 다른 승객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순간은 감정적 울림을 남긴다. 너나 할 것 없이 밤새 줄을 서서 자신의 생사를 걱정할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모습에서는 애틋함을 느낄 수 있다.

한자리에 모인 승객과 주민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잠시 걱정을 잊는 순간은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이방인들을 텃세 없이 받아들이는 갠더 주민과 낯선 도시에 정을 붙인 승객들은 한데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따뜻함을 전한다.

해당 장면에서는 라이브 세션도 무대에 등장해 실제 잔치가 열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기타와 유사한 소리를 내는 만돌린, 관악기인 휘슬로 연주하는 켈틱 음악에서 정겨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나가 된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작품이지만 이슬람 시민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정서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서 당할 차별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이슬람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한 몸수색을 당한 승객의 이야기가 무겁게 다가온다.

특히 비행기의 기장 비벌리가 몸수색으로 모멸감을 느낀 승객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인상을 남긴다. 아메리칸 에어라인 최초의 여성 기장으로 숱한 차별에 맞선 비벌리가 또 다른 차별의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공감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남경주, 최정원, 정영주, 차지연 등 배우 12명이 1인 2역 이상을 소화한다. 배우들은 옷을 갈아입으며 갠더 주민과 비행기 승객 등을 번갈아 연기한다. 숱한 장면 변화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호흡을 감상할 수 있다.

공연은 내년 2월 18일까지 계속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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