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3년째 사도광산 추도식서 '조선인 강제노동' 언급 안해(종합)

日정부, 추도사에서 "고된 노동 종사…애도"라고만 표현
韓, 강제노동 인식 차 지적하며 3년째 日측 추도식 불참

조성미

| 2026-09-12 17:13:22

▲ 2026년 일본 측 사도광산 추도식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에서 12일 '사도광산 추도식'을 열었다. 올해 추도식에서도 조선인 강제 노동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한국 정부는 별도로 추도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2026.9.12 csm@yna.co.kr
▲ 세계유산 등재 1년 맞은 일본 사도광산 (사도[일본]=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년을 맞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 2025.9.14 psh59@yna.co.kr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 인근에서 12일 '사도광산 추도식'을 열었다. 올해 추도식에서도 조선인 강제 노동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본 정부 대표로 이날 니가타현 사도시 공민관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한 하마모토 유키야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국장급)은 추도사에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전쟁 중 갱내라는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고된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그는 이어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도 있다"며 애도를 표했지만 재작년이나 작년과 대동소이한 추도 내용만 담았고, 당시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추도식은 니가타현, 사도시, 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실행위원회가 주최했으며 약 70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에게 국화를 바치고 묵념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2024년부터 열린 추도식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추도식은 일본이 2024년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조선인 강제노동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할 것을 요구하자 한국 측 협조를 얻기 위해 약속한 사항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일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이 온전히 개최될 수 있도록 일본 측과 진지하게 협의를 이어왔으나 핵심 쟁점에 대해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번에도 일본 측 추도식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일본이 2024년 첫 추도식을 준비하면서부터 행사 이름과 추도사 등에서 조선인 노동 강제성 등을 둘러싸고 한국 측과 큰 견해차를 보이자, 한국 정부는 별도의 사도광산 희생자 추도식을 해마다 열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올해도 일본 측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한다고 발표하면서 "정부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의 관련 결정에 주목하며 일본 측이 결정상 권고를 충실하고 완전하게 이행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년)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전시 물자 확보를 위한 광산으로 활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이 광산은 2024년 7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등재를 앞두고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에 조선인 강제노동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일본에 요구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후 강제노역 사실을 충분히 표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7월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결정문도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는 해석·전시 전략을 수립하라는 세계유산위의 권고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일본 측의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충분하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현지 언론에서도 일본 측 추도식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도통신은 이날 추도식에서 희생자의 이름조차 명시되지 않은 채 관계자들의 인사말만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니가타현립문서관이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명부를 소장하고 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후지이시 다카요 니가타대 교수는 일본 측 추도식이 "누구를 추도하는지조차 밝히지 않은 채 고인이 겪은 고통과 유족의 슬픔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니가타현 시민들은 한국에서 사도광산 생존자와 유족을 찾아내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일본의) 가해 사실을 직시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추도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조선인 수는 1천519명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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