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에도 사람 얼굴이 있어"…장소에 감정 입힌 이우성

"얼굴 묘사하듯 풍경 그려"…도시·자연 넘나들며 기억과 감정 쌓아내
인물 그리던 이우성 작가의 변신…갤러리현대서 4월 26일까지

박의래

| 2026-03-17 17:11:39

▲ 이우성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 작 '새벽녘 폭포 아래서'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 작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 작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 작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내가 보일 거야'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우성 작가가 17일 갤러리현대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3.17. laecorp@yna.co.kr

"풍경 속에도 사람 얼굴이 있어"…장소에 감정 입힌 이우성

"얼굴 묘사하듯 풍경 그려"…도시·자연 넘나들며 기억과 감정 쌓아내

인물 그리던 이우성 작가의 변신…갤러리현대서 4월 26일까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지금, 우리'를 그리던 작가 이우성(43)이 '지금,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 사간동에 있는 갤러리현대는 오는 18일부터 이우성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를 개최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을 그려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물 대신 눈앞의 풍경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한강대교, 종로3가역, 뚝섬유원지, 경포 해변 같은 특정 장소부터 골목길·주차장 등 도시 공간, 논과 밭, 바다와 계곡, 폭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이 등장한다.

풍경이 주인공인 만큼 섬세하게 재현됐다. 여기에 작가의 기억과 시간의 층위가 중첩되고 감정이 녹아들며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등장인물은 과거 자화상 작업과 마찬가지로 성별·인종·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만화적 캐릭터로 표현됐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눈, 코, 입, 얼굴을 묘사하는 것처럼 풍경을 그려봤다. 풍경 속에도 얼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려보니 결국 사람을 드러내려고 풍경을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작품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우린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었어'는 노을이 지는 제주 성산일출봉의 비탈길 풍경을 보여준다. 솟은 언덕과 그림자가 화면 앞 인물의 표정과 연결되며 불안과 외로움을 암시한다. 하지만 자연 풍경이 어우러지며 따뜻한 온기를 함께 품는다.

'새벽녘 폭포 아래서'는 제주도의 3대 폭포 중 하나인 정방 폭포가 배경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지만 제주 4.3 사건의 학살터라는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비극과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기도 하고 떠난 사람을 떠올리며 슬퍼하기도 한다.

작가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한여름 이른 새벽에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현재를 보내는 모습을 녹여봤다"고 설명했다.

대형 걸개그림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는 2021년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해물 선전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다. 산속에 마을이 펼쳐져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하단 길가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 남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성소수자이자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룬 장영진의 소설 '붉은 넥타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애기봉 전망대에서 북쪽을 봤는데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봐야만 하는데 그러면 또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체를 조망하고 싶어 크게 그려봤다"며 "북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며 한 인물을 그려봤다. 결국 이 작은 사람을 그리려고 큰 풍경을 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과 같은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에선 빌딩 숲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모여 대보름 달집태우기를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작가는 "내가 원래는 어디에 붙어있는 존재인데 떨어져 나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지만, 원래는 하나였다가 흩어졌던 사람들이 불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는 것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는 작가가 다양한 풍경 속에서 녹음한 사운드 작업도 들을 수 있다. 새벽 귀뚜라미 소리, 오전 10시 지하철 4호선, 새해 보신각 타종, 매미 소리 등이 재생된다.

작가는 "이번 작품들에는 일기를 쓰듯 내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 넣어 봤다"며 "시간을 내서 내 그림을 보러 온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나갈 때는 감정적인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우성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마쳤다.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수상 작가이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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