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9-30 16:52:10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다룬 국립극단의 프로젝트 '안트로폴리스' 5부작 시리즈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하반기 남은 3편으로 관객을 만난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테베의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하나의 긴 연대기로 묶은 '안트로폴리스'는 문명사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30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안트로폴리스'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예술감독은 "'현존과 좌표'라는 큰 타이틀을 갖고 라인업을 시작했다"며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인간은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안트로폴리스'도 그 일환"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롤란트 쉼멜페니히 극작가가 고전 신화를 동시대 포스트 드라마적 형식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그가 던지는 동시대적인 질문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국립극단은 지난해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윤한솔 연출)와 2부 '라이오스'(김수정)를 선보였다. 올해는 지난 24일 개막한 3부 '오이디푸스'(강량원)로 시작해서 다음 달 28일 개막하는 4부 '이오카스테'(서지혜), 12월 5부 '안티고네/에필로그'(정영두)를 끝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각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동시대와 호흡하는 연극의 역할과 방향성을 모색했다.
3부 '오이디푸스'의 강량원 연출은 "국립극단이 연출 언어를 분명하게 가진 5명의 연출가와 작업하는 것을, 변곡점에 서 있는 한국 연극의 방향을 모색해 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이디푸스'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권위 있는 왕이 아닌 상처와 결함이 있는 '소수자'로 형상화했다. 강 연출은 "수치와 상처로 가득 찬 사람의 몸을 무대에 세웠다"며 "그런 경험을 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3부에서 비극적 신탁으로 인해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가 되는 운명에 갇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오카스테는 4부 '이오카스테'에서 다시 살아나 무대의 중심에 선다. 작품은 이오카스테가 느끼는 혼란과 불안, 갈등을 통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과 무게를 반추한다.
4부의 서지혜 연출은 "이 작품이 피와 폭력에서 발생한 문명의 역사,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동시대인들에게도 고대와 다름없는 비극이 초래할 것이란 강력한 경고를 준다고 생각했다"며 "비극을 반복하는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인간성·윤리·도덕 등에 대해 다시 묻는 질문자 이오카스테의 등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안티고네/에필로그'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딸 안티고네를 다룬다.
5부 연출을 맡은 정영두 연출은 "나와 다른 사람의 신념이 부딪힐 때 그것을 풀어가는 인간의 지혜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신념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나눌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하며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연출 방향을 소개했다.
이 시리즈는 인공지능(AI)과 재난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연극이 마주한 변곡점과도 맞물려 있다.
강량원 연출은 "지금 연극계는 예술 산업화, AI, 각종 재난에 대해서 예술 혹은 연극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의무감을 갖고 있다"며 "이 기획이 그런 문제의식의 한 일환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예술감독 역시 "AI 시대 속에서 인간 개념 자체가 해체되고 있듯이, 무대 위 인물과 배우를 기존 틀에서 해체하는 포스트 드라마적 방식은 요즘 젊은 세대의 현실 감각과 부합한다"며 "관객들이 변곡점을 겪는 것이고 연극도 서서히 이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근 고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높은 관심을 받는 데 대해 "고전과 신화에는 인간과 역사의 뿌리가 담겨 있다"며 "우리가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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