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래원
| 2026-09-06 16:40:00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영화 '오디세이'가 26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국내에서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게 됐다.
그의 13번째 장편 '오디세이'의 천만 관객 돌파는 2014년 '인터스텔라'가 천만 고지를 밟은 지 12년 만의 일이다.
◇ '메멘토'부터 장르 넘나든 도전…블록버스터에 철학 입혀
놀런 감독은 국내에서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수백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집계를 시작한 2004년 이래 '다크 나이트'(2008)부터 '오디세이'(2026)까지 그의 영화가 동원한 국내 관객 수는 4천600만 명이 넘는다.
초기작 '메멘토'(2001)로 먼저 주목받은 놀런 감독은 이후 범죄 스릴러와 슈퍼히어로물, SF, 전쟁영화, 전기영화 등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장르는 달라도 복잡한 서사 구조와 인간의 선택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대규모 볼거리와 결합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특징이다. 시간과 기억 역시 이런 질문을 풀어내기 위해 놀런 감독이 즐겨 활용해온 소재다.
배트맨 시리즈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다크 나이트'는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를 앞세워 국내에서 428만여 명을 동원했다.
슈퍼히어로와 악당의 대결을 선과 악, 정의와 혼돈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하고, 꿈이라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여러 겹의 시공간으로 설계하는 등 대중적인 장르 안에 작가적 색채를 녹여냈다.
2년 뒤 선보인 '인셉션'(2010)은 꿈속에 들어가 타인의 생각을 훔친다는 독창적인 설정과 여러 겹으로 얽힌 시간 구조를 내세워 601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놀런 감독 특유의 작가적 색채가 국내 관객에게도 본격적으로 각인된 작품이다.
놀런 감독의 국내 인기를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은 '인터스텔라'(2014)였다.
인류가 생존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인터스텔라'는 웜홀과 상대성이론 등 쉽지 않은 과학 개념과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에도 1천38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한국에선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인터스텔라'를 본 관객이라면 '놀런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오디세이'는 극장 관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영화 관람의 형태를 대중에게 다시 각인시켰다"고 평했다.
◇ '덩케르크'·'테넷' 거쳐 '오디세이'로…역사와 신화로 세계관 확장
'인터스텔라' 이후에도 놀런 감독은 익숙한 장르의 문법을 비틀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케르크 철수 작전을 소재로 한 '덩케르크'(2017)는 전쟁영화로,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내세운 '테넷'(2020)은 첩보·SF 영화로 풀어냈다. 두 작품은 국내에서 각각 약 280만 명과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놀런 감독의 영화는 양자물리학에서 2천800년 전 고전까지를 다루며 한국인들의 지적 욕구를 건드린다"며 "또 동시대에 잃어버린 가치에 관해 짚어주면서 감동을 주는 부분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놀런 감독은 '시간'의 개념을 자유자재로 편집에 이용하는 감독"이라며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 심지어 사회적, 정치적 시간에 대한 통찰도 깊다"고 분석했다.
이런 작품세계는 실존 인물을 다룬 '오펜하이머'(2023)에서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은 3시간짜리 전기영화라는 흥행에 불리한 조건에도 국내에서 323만여 명을 동원했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놀런 감독은 이 작품에서 인류에게 원자폭탄이라는 파괴적인 힘을 안긴 오펜하이머를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넨 뒤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했다.
현대사의 실존 인물을 고대 신화 속 인물과 겹쳐 인간성을 고찰했던 놀런 감독은 차기작 '오디세이'에서는 아예 고대 서사시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오펜하이머'가 문명을 파괴할 힘을 만들어낸 인간과 그에 따른 죄책감을 그렸다면,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 역시 트로이 전쟁과 귀향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선택의 결과와 마주한다.
손님과 주인 사이의 환대 규범인 '제우스의 법'을 자신이 깨뜨렸다는 데 대한 죄책감도 그의 긴 귀향 여정을 관통한다.
◇ 7살 때부터 영화 만든 '영화광'…아내 에마 토머스와 30여년 동행
1970년 영국 런던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놀런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빠져들었다.
7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카메라를 이용해 장난감 등을 등장시킨 영화를 만들었고,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본 조지 루커스 감독의 '스타워즈'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큰 영향을 받았다.
영화학교 대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재학 중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직접 영화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총예산 6천달러의 첫 장편영화 '미행'을 내놨고, 이어 '메멘토'로 세계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 후 '인썸니아'(2002)와 배트맨 3부작 등을 거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놀런 감독의 영화 인생에는 대학 시절 만난 아내이자 프로듀서 에마 토머스가 줄곧 함께했다.
놀런 감독과 토머스 프로듀서는 UCL 영화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고, 2001년 제작사 '신카피'를 공동 설립했다. 토머스는 이후 놀런 감독이 연출한 모든 장편영화의 제작에 참여하며 30년 가까이 창작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오펜하이머'로 각각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으며 나란히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두 사람은 지난달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부부는 첫 내한작 '오디세이'로 한국에서 두 번째 천만 영화라는 기록도 함께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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