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책부터 갓 전용 보관함, 요강까지…종이와 함께한 일상(종합)

호림박물관, '여지동락' 특별전…국보 2점 포함 총 152점 선보여
종이 기능·기법과 전광영·이응노 등 현대 작가와의 '조화' 모색

김예나

| 2023-03-02 16:36:52

▲ 전시실 모습 [호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보 '백지 묵서 묘법 연화경' 권제 1~7 [호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호림박물관 '여지동락'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2일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개막한 '여지동락(與紙同樂) - 종이와 함께하는 즐거움' 전시실 모습. '한지 작가'로 잘 알려진 전광영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2023.3.2 yes@yna.co.kr
▲ 종이를 활용한 과거와 현재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2일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개막한 '여지동락(與紙同樂) - 종이와 함께하는 즐거움' 전시실 모습. 종이로 만든 굴레함, 갓통 너머로 이응노(1904∼1989) 화백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2023.3.2 yes@yna.co.kr
▲ 전시 포스터 [호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각종 책부터 갓 전용 보관함, 요강까지…종이와 함께한 일상(종합)

호림박물관, '여지동락' 특별전…국보 2점 포함 총 152점 선보여

종이 기능·기법과 전광영·이응노 등 현대 작가와의 '조화' 모색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종이는 얇고 가볍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바탕부터 필통, 부채, 상자 등의 재료에 이르기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목화 솜이 귀하던 시절에는 옷감과 옷감 사이에 종이를 넣어 찬 바람을 막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익숙하지만, 때로는 중요성을 잊기도 하는 종이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전시가 열린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종이를 주제로 한 특별전 '여지동락(與紙同樂) - 종이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2일 공개했다.

국보 2점, 보물 6점을 비롯한 유물부터 현대 공예품까지 총 152점을 아우른 전시다.

전시는 불경을 옮겨 쓴 사경(寫經) 유물로 시작한다. 인류의 문화를 전승하고 기록해 온 종이 본연의 역할에 집중한 도입부다.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하얀 닥종이에 쓴 국보 '백지 묵서 묘법연화경'을 포함해 고려·조선시대 다양한 사경 유물을 볼 수 있다.

종이 관련 유물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낯선 작품과 맞닥뜨린다.

지난해 세계 최대이자 최고 권위의 미술 축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전통 한지 조형물로 주목받은 전광영 작가의 작품 2점이 주인공이다.

오혜윤 학예연구사는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만남"이라며 "전시를 기획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가 바로 전 작가였는데 고서를 활용한 작품에 역사, 기억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금속활자와 문인이 사용했던 종이 공예품을 선보이는 '종이, 정신을 밝히다'로 이어진다.

경자자(庚子字), 병진자(丙辰字) 등 다양한 금속활자 인쇄본, 양반 문인이 사용했던 문방구, 검소한 매력을 뽐내는 종이 공예품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거대한 '검은 종이'는 관람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오 학예연구사는 "최병소 작가의 신문지 작품은 제 역할을 잃은 신문의 폐단을 드러낸다. 신문 기사를 까맣게 지워내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올곧은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실의 마지막 부분인 '종이, 생활 속에 스며들다'는 종이를 활용한 다양한 기법을 비춘다.

두꺼운 종이나 나무로 기본 형태를 만들고 안팎으로 한지를 여러 겹 발라 각종 함이나 상자를 만든 지장(紙裝) 기법, 종이를 꼬아서 끈을 만들어 엮은 지승(紙繩) 기법 등을 활용한 공예품이 시선을 끈다.

휴지나 파지를 버리지 않고 활용한 공예 기법은 선조들의 지혜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은 갓 전용 보관함,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쓴 갈모, 다양한 부채 등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의 머리에 씌우는 모자인 굴레를 보관하던 함, 반구 형태의 갓 통과 고(故) 이응노(1904∼1989) 화백이 1960년대 작업한 작품을 함께 놓은 점은 특히 눈길을 끈다.

오 학예연구사는 "이 작가는 한지 위에 다른 종이를 붙이는 식의 작업을 1960년대에만 했다고 한다. 종이를 이용한 기법이 과거와 현대에 어떻게 공존하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재미난 종이 작품도 많다. 종이로 만든 요강이 그중 하나다. 여성들이 가마 안에서 볼일을 봐야 할 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만들었을 거라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오 학예연구사는 "훗날 양반가 서책이 도둑맞을 정도로 종이는 귀하게, 또 많이 쓰였다"며 "종이가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물과 불 모두 잘 어우러지던 활용성 높은 재료였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1·2차로 나눠 진행된다. 1차는 5월 13일까지, 2차는 5월 23일부터 7월 2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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