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 2025-07-02 15:59:27
춘천고 주도 항일운동 '상록회' 광복 80주년 앞두고 재조명 관심
日 연구자 논문·판결문 복원…지역 항일 학생운동사 실체 분석 계기
학교 측, 항일운동 학생 이름 명판 제작…교내 역사투어 추진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광복절 80주년을 앞두고 강원도 춘천의 한 학교에서 결성된 '상록회'의 항일학생운동이 재조명돼 관심을 끌고 있다.
상록회는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이 한창이던 1937년 당시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현 춘천고) 학생들이 주도해 설립됐다.
당시 조선의 자주독립을 목표로 만들어졌지만, 관련자들이 사상범으로 분류돼 연좌제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침묵했고, 공적에 대한 평가와 훈장 수여 등도 이뤄지지 않은 채 역사의 전면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 연구자의 논문과 재판을 통해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주목받는다.
◇ 역사 속 묻혔던 항일 학생운동…일본인 연구로 재조명
역사를 전공한 이상철 춘천고 교장은 지난 1994년 당시 일본 효고 교육대학대학원 사회계 과정에 재학 중이던 이누마 히로카즈 씨가 발표한 '춘천상록회사건연구 - 상록회 신문 기록을 통해서' 논문을 발견했다.
이누마 씨의 논문에는 상록회 사건 관련 신문 기록을 발굴·분석해 조직의 성격과 활동상을 조명했다.
이는 일본 연구자에 의해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항일학생운동이 본격적으로 다뤄진 드문 사례로 꼽힌다.
연구 배경에는 일본 고베에서 한국 관련 사료를 수집·보존해온 재일동포 한석희 씨의 조력이 큰 도움이 됐다.
또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한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등 일제 사법 문서도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분석됐다.
상록회 사건의 법적 경과와 활동 전모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판결문에는 상록회의 조직 체계, 활동 강령, 주요 피고인의 진술 및 형량이 상세히 기재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상록회는 1937년 가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본격화된 일제 전시체제 아래 조선어 사용 금지, 신사참배 강요, 급식 차별 등 억압에 맞서 결성됐다.
당시 춘천에 있던 만수당 빵집 사건을 계기로 동맹휴학과 진상 규명 운동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비밀조직 상록회의 존재가 드러났다고 기술돼 있다.
조직은 독서회 활동을 외곽 기반으로 해 민족주의 사상 훈련과 독립운동 의식 고취에 힘썼다.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등이 필독서로 지정됐으며, 회원들은 회비를 납부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민족 현실을 토론하고 독립의 필요성을 공유했다.
농촌 경로회나 부인회 등을 통해 역사교육, 조선어 교육 등 실천 활동도 전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939년 당시 상록회 및 독서회 관련 학생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선고와 고문을 당하면서 지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일제는 이 조직을 '국체 변혁을 꾀한 사상범 결사체'로 규정하며 탄압했다.
◇ 상록회 항일학생운동 선양사업 추진
최근 100주년을 맞은 춘천고는 이번에 발견된 상록회 항일학생운동 자료를 토대로 1930년대 조선 학생들의 민족 자각과 실천 사례에 대한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학교 측은 이번 재조명을 계기로 그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명판을 만들어 교내 상록탑 앞에 전시하기로 했다.
명판에는 항일학생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민족 자각과 실천을 위해 현재까지 이 학교 출신으로 파악된 40여명의 이름이 새겨질 예정이다.
현재 교정에는 6·25에 참전한 학생을 기리는 기념비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름을 쓴 상록탑이 세워져 있다.
상록회 비문에는 "조국의 운명이 어둠 속에 들었던 한때, 우리 민족이 치욕의 역사를 벗어나려 일제에 항거하는 운동을 벌이던 중에 1936년 춘고학생들을 중심으로 상록회라는 숨은 모임을 조직하고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일이 있었다"고 적시돼 있다.
학교 측은 이곳 주변에 도내 학생운동에 참여해 나라를 지켰던 뜻을 기리는 강원학생독립운동기념관 건립도 추진 중이다.
이상철 교장은 "일제강점기 식민운동에 반대하고 동맹휴업과 비밀결사인 상록회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펼친 유서 깊은 교정을 둘러보는 역사 투어코스를 개발하고 재학생에게 상록정신을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재조명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침묵의 역사에 남아 있던 지역 항일운동의 실체를 복원하고, 한국 항일학생운동사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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